■ 남미는 휴대폰 대역전 전초기지…삼성 이미 판세를 뒤집었다
이달초 브라질 상파울루의 신흥 상권인 모룸비의 한 백화점. 비상하는 삼바 경제의 열정이 느껴지는 이곳 젊은이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바로 중심 로비 한 쪽에 자리잡은 '삼성 익스피리언스 센터'(Experience Center)이다. 최첨단 신제품을 직접 조작하고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3차원(3D) 안경을 낀 채 감탄사를 연발했고, 스마트폰을 꼼꼼하게 살피기도 했다. 김성환 삼성전자 부장은 "최근 브라질 경제가 뜨면서 가전 제품과 휴대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지금까진 주로 전시만 했으나 제품을 현장에서 사고 싶다는 주문이 많아, 다음달부터는 아예 판매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층에 있는 가전 유통 전문 업체 '패스트', '프낙', '폰토프리오' 등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우리나라 기업들의 제품들이 매장의 전면과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 제품들은 찾기 힘들었고, 간혹 전시된 제품도 소비자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삼성전자 40인치 LED TV는 무려 5,498헤알(한화 380만원)이란 고가에도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었다. 국내보다 2배 이상 비싼 가격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황금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남미 대륙에서 질주하고 있다. 선봉에 선 제품은 휴대폰이다. 세계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아직 노키아에 밀리고 있지만 남미에선 판세가 이미 뒤집혔다. 특히 브라질에서 삼성전자 휴대폰의 시장 점유율은 2008년 12%에서 지난해엔 20.0%로 3위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엔 34.7%까지 치솟으며 급기야 정상에 올랐다. 반면 그 동안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노키아의 1분기 시장 점유율은 25.7%로 추락했다. 삼성전자 휴대폰의 글로벌 대역전 드라마가 바로 남미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남미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데엔 경제 성장 수준에 맞춘 프리미엄 제품을 내 놓은 것이 주효했다. 아직은 경제력이 넉넉하지 못한 신중산층도 감내할 만한 가격대의 고급 휴대폰으로 '스타폰'을 출시한 것. 기존 일반폰과 달리 풀터치폰이면서 20만원대의 가격으로 공급, 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시장에서 물건이 팔리는 속도로 물건을 공급하는 신공급망관리는 삼성전자 경쟁력의 핵심으로 그 위력을 발휘했다. 전 세계 시장의 변화를 사실상 실시간 감지해 이를 공급망 및 판매망과 연결시켜 관리하는 것이 요체인데, 품목별로 지역별로 매일 매주 업데이트되며 공급과 수요가 딱 일치하게 해 놨다. 이렇게 되면 재고가 사라져, 무리하게 제품을 시장에 덤핑으로 내 놓을 일도 없어진다. 거래선의 만족도도 커질 수 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의 미세한 변화도 감지하는 시스템을 통해 소비자 접점을 넓히는 것은 물론이고, 고객 만족을 위한 혁신 활동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신공급망관리에 힘입어 휴대폰뿐 아니라 다른 제품들도 시장 지배력이 독보적인 수준이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의 브라질 시장 점유율은 1분기 48%를 기록했다. LCD 모니터도 지난해 41%, 프린터복합기는 38%나 됐다.
삼성전자 중남미 지역(멕시코 제외)의 매출 성장률은 2007년과 2008년 각각 전년 대비 24%, 19%를 기록했고, 지난해도 금융 위기 와중에서 6%로 선전했다. 특히 올해엔 50%를 뛰어넘는 성장률이 기대된다. 70억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역에 따라선 100% 가까운 성장률도 나올 것"이라며 "남미 시장은 이미 삼성전자에게 미국, 구주, 중국에 이은 제4의 시장이 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특히 이러한 남미 휴대폰 신화를 3D TV에 이어 에어컨에서도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에어컨은 이미 아르헨티나와 콜롬비아 등에서는 시장 점유율 1위다. 그러나 남미 전체로는 월풀이나 캐리어 등 글로벌 플레이어에게 뒤처진다. 다만 4월 상파울루에서 열린 '국제 건축 박람회'에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삼성전자 에어컨 전시장을 방문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심혁재 삼성전자 상무는 "브라질의 풍부한 자원 및 성장하는 시장과 삼성의 최첨단 디지털 기술력이 만난다면 큰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며 "현지화를 통해 남미에서 가장 사랑 받는 브랜드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인터뷰/ 유두영 삼성전자 중남미 총괄
"브라질 국민의 평균 나이는 28세이다. 경제 성장으로 계속 두터워질 중산층은 앞으로 안정적이면서 좋은 소비자가 될 것이다."
유두영(사진) 삼성전자 중남미 총괄(전무)은 한국 기업들이 브라질 기회를 놓쳐선 안 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삼성에서 지난 20여년 동안 브라질에 3번이나 파견된 남미 전문가다. 1987년에는 주재원으로, 98년에는 브라질법인장으로, 2008년부턴 중남미 총괄로 이곳을 지켰다. 유 전무는 그러나 과거의 브라질과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고 강조했다.
반전의 계기는 유전 발견과 인플레 치유다. 그는 "예전에는 브라질엔 석유 이외의 모든 자원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심해 유전 원유 매장량만 수백억 배럴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특히 1993년 2,477%였던 물가상승률이 최근에는 5% 내외로 하락할 정도 경제가 안정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브라질은 2014년 국민총생산(GDP)이 세계 5위에 이르는 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이미 브라질 자동차 시장은 세계 4위(판매량 기준)이다.
유 전무는 "국가 차원에서 봐도 자원이 풍부한 브라질은 우리의 전략 시장이 될 수 밖에 없는데도, 우리나라에서 브라질의 모국어인 포르투갈어를 가르치는 대학은 단 2곳에 불과할 정도로 우리의 관심에서 먼 나라였다"라며 "월드컵(2014년)과 올림픽(2016년)을 앞두고 역대 최대 호황기를 맞을 브라질에 대해 이젠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아르헨 인터폰 90% 장악 '코맥스 신화'
아르헨티나에서는 '인터폰'을 '코맥스'라고 부른다. 아르헨티나 인터폰 시장의 90% 이상을 코맥스 제품이 차지하다 보니 한 회사의 브랜드가 일반 상품명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코맥스'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 중소기업이다.
경기 성남시의 코맥스가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 시장에서 이렇게 선전하고 있는 것은 남들보다 먼저 시장 개척에 나선 뒤 철저하게 현지화를 추구했던 결과이다. 코맥스가 아르헨티나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무려 24년전인 1986년. 아르헨티나의 경우 유통에선 철저하게 가족 중심으로 경영되는 중소 전기 도매상의 위치가 확고하다는 점에 착안, 하나의 에이전트만을 두고 돈독한 관계에 공을 들여 왔다. 특히 지역별로 자리잡고 있는 전기 도매상은 한 지역에서 몇 대에 걸쳐 세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코맥스는 오직 이 에이전트와 함께 성장하는 전략을 택했다.
현지의 실정에 맞는 제품을 내 놓은 것도 빼 놓을 수 없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아직 치안이 불안한 점을 감안, 외부 설치 카메라는 망치로 때려도 부서지지 않는 특수 바늘구멍 카메라를 적용했다. 선호도를 조사, 흑백 비디오폰을 집중 출시한 점도 한 몫 했다. 변우석 부사장은 "남미는 지리적으로 다소 먼 것은 사실이나, 공을 들인 만큼 확실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홍완기 흥진HJC 회장도 최근 남미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홍 회장은 흥진HJC를 오토바이 헬멧 세계 시장점유율 1위로 키운 신화적 인물. 그는 최근 브라질을 찾은 뒤 "브라질 경제가 이렇게 발전하고 시장의 변화가 이렇게 빠른 줄 몰랐다"며 현지 업체와의 다양한 협력을 통한 시장 진출을 추진키로 했다. 브라질에서는 최고급 오토바이인 할리데이비슨을 타는 사람들도 싸구려 헬멧을 착용할 정도로 쓸 만한 제품이 적다.
상파울루(브라질)=글ㆍ사진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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