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자본 유출입을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은 13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은행에 선물환 거래 한도를 신설하고 외화대출의 용도 제한을 강화하는 등의 '자본 유출입 변동 완화방안'을 발표했다. 주요 20개국(G20) 논의에 맞춰 은행들의 비예금성 부채에 은행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공식화했다. 위기 때마다 되풀이되는 급격한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달러 유입'문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규제 배경
우리나라가 위기에 취약한 근본적인 이유는 변동성이 큰 외화 유출입에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해외 자본이 과도하게 유입됐다가 대내외 경제여건이 악화되면 일시에 빠져나간다. 그러니 대내외 상황이 조금만 안 좋아지면 '위기설'이 횡행한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우리가 경험한 두 차례 위기 모두 비슷한 패턴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정되고 우리 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하면서 다시 국내로의 자본 유입이 재개되는 추세. 올 들어 4월말까지 816억달러가 유입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에 유출됐던 금액(695억달러)을 능가하는 액수다.
하지만 이렇게 급속히 유입된 외화는 또 다시 일시에 유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이런 악순환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외화 유입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문턱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선물환 규제
대책의 핵심은 선물환 규제다. 과도한 선물환 거래가 단기외채 증가의 주범이라는 인식 때문이다.(본보 5월18일자 18면ㆍ6월11일자 22면 참조) 은행 등에 선물환 포지션 한도, 즉 자기자본의 일정비율 이상으로 선물환 거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가 신설된다.
국내은행은 전월말 자기자본의 50%, 외국은행 국내지점(외은지점)은 250%가 한도다. 4월말 기준으로 국내은행의 선물환 포지션은 자기자본 대비 15.6%로 신설 규제(50%)보다 크게 낮지만, 외은지점은 301.2%에 달해 일정 정도 충격이 불가피하다. 4월말 현재 55개 국내외 은행 중 한도를 초과해 선물환을 매입한 은행은 19곳으로 금액으로는 187억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충격 완충장치도 마련됐다. 시행시기를 규정 개정(7월) 이후 3개월 유예했고, 기존 거래분에 대해서는 최장 2년간 인정을 해주기로 했다.
기업들 역시 실수요 이상의 투기적인 선물환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선물환거래 한도를 실물거래의 125%에서 100%로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기타 규제
외화대출에 대한 용도 규제도 강화한다. 대외결제나 차입금 상환 등 해외사용 용도가 아닌 국내 시설자금 구입용 외화대출은 금지하기로 했다. 3월말 현재 국내 시설자금에 대한 외화대출 잔액은 108억달러에 달한다. 재정부 관계자는 "앞으로 국내 경기 회복 기대감 등으로 외화대출을 받아 시설자금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은행부담금(은행세) 도입에도 적극 나선다.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으로서 합의된 원칙이 도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사전 준비를 해나가겠다는 것.
이밖에 ▦한국투자공사(KIC)와 국민연금의 외환보유액 보충 역할을 강화하고 ▦국내은행에 대한 중장기 외화자금관리비율 기준을 90%에서 100%로 상향조정하며 ▦국제금융센터 내에 '자본유출입 모니터링본부'를 설치하는 등의 방안도 내놓았다.
효과 및 반응
대부분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에 비교적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대외 환경에 취약한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감안할 때 일정 정도 규제는 불가피하다"고 했고,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도 "세계 추세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대책의 내용이 상당 부분 시장에 알려졌고, 유예기간 등 완충 장치도 마련된 만큼 시장에 미치는 충격도 크지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관건은 과연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느냐다. 외환시장 한 관계자는 "급격한 자본 유출입을 해소하는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해외 투자자들의 직접 투자 등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방안이 얼마든지 있는 만큼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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