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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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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월드컵

입력
2010.06.1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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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의 고함소리, 자유분방한 축제 기분, 사육제 분위기, 콘서트와 극장의 영광, 종교적 경건함. 이 모든 것이 그 한 장소, '전장'이면서 '파티 홀'이고 '마녀의 솥'이고 '오페라하우스'이고 '성당'인 축구장에 모여 있다."( 중에서) 축구는 인간의 욕망과 원시성을 재현하는 스포츠다. 22명의 강인한 남성들이 1시간30분 동안 오로지 골을 향해 차고 달리고 부딪치며 구른다. 룰은 가장 단순하지만, 승리를 위한 전술은 결코 간단치 않다. 개인ㆍ부분ㆍ팀 전술 등 무한대의 전술 운용이 가능하다. 신체기관 중 가장 원시적이고 파괴적인 다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변 가능성도 높다.

■ 축구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스포츠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TV로 지켜본 지구촌의 누적 시청자 수는 263억명에 달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은 국제연합(UNㆍ192개 회원국)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ㆍ205개)보다 많은 208개. 구기종목 중 가장 많은 숫자의 선수들이 수만 명 관중의 함성 속에 인간의 원초적인 폭력성을 드러내며 격돌하는 축구의 열기에서 민족주의 코드를 찾는 것은 자연스럽다. 1930년 제1회 월드컵에서 우승한 우루과이 감독 온디 오비에나는 "사실상의 축구전쟁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한 바 있다.

■ 세계 최대 규모의 축구 국가대항전인 월드컵은 흔히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된다. 실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축구에서의 격돌이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탈리아 무소리니 정권은 제2회 월드컵 대회를 파시즘의 선전장으로 활용했고, 박정희 정권은 1971년 '박스컵'으로 불리는 국제축구대회를 만들어 유신체제 선전의 도구로 삼았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는 28년 전 포클랜드 전쟁이 재연되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남아공 월드컵에 합류했다. 월드컵은 국가의 이름으로 민족적 자존심과 상처를 드러내고 해소하는 경연장이다.

■ 월드컵은 거대 자본이 부추기는 소비의 이벤트이기도 하다. FIFA는 남아공 월드컵 TV 중계권과 공식 스폰서 체결 등을 통해 이미 40억유로 이상을 거둬들였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공룡 기업인 셈이다. 상품 가치가 검증된 월드컵 이권을 둘러싼 방송사와 자본의 이전투구는 국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광장에 모여 하나가 된다. 2002년의 거리응원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창조적 퍼포먼스였다. 남아공 월드컵도 권력과 자본의 논리를 뛰어넘어, 지역ㆍ세대ㆍ이념 갈등을 해소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연대감을 확인하는 축제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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