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매일 3명의 13세 미만 어린이가 성폭력을 당한다. 정부는 안양 초등학생 성추행 살해사건 발생 직후인 2008년부터 '아동ㆍ여성 보호대책 추진 점검단'을 운영, 아동 성폭력 재발 관련 27개 세부과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비웃듯 범죄건수는 매년 1,000건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어 '제2 조두순 사건'(본보 9일자 16면, 10일자 16면, 11일자 1ㆍ17면) 이후에도 제3, 제4의 조두순 사건이 재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허점투성이 대책들
점검단의 대책은 핵심이 빠져 있어 그야말로 '팥소 없는 찐빵'이다.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지역 안전망 구축 및 운영 활성화' 과제에 따라 정부는 4월말 전국 246개 지자체별로 지역연대를 구성했지만 사건 발생 시 현장 대응능력은 거의 없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의료인 경찰관 법률가 교육자 등 전문가가 부족해 충원 중"이라며 "이번 제2의 조두순 사건으로 시급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성범죄자의 신상 정보를 손쉽게 조회토록 한 '인터넷 열람제도'도 알맹이가 없다. 정부는 올 1월부터 이 제도를 시행했지만 조회할 수 있는 성범죄자는 한 명도 없다. 법 시행 이후 발생한 성범죄부터 적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에서 관리하고 있는 이전 전과자료를 추가하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제도가 실효성을 갖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아동 성폭력 재발과 동떨어진 대책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3월 시작한 아동안전 지킴이 사업이 대표적이다. 퇴직 경찰관 등 전문 인력이 오후 2~6시 하굣길과 놀이터, 공원 등을 순찰하는 제도인데, 이들의 지난해 실적은 교통사고 예방(1만5,960건)이 실종, 폭력 등 범죄 예방(1만2,500여건)보다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교통사고 예방 실적은 높이 평가하지만 이게 아동 성폭행 예방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사후약방문조차 부실
제2의 조두순 사건이 발생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10일 뒤늦게 '365일, 24시간 학교 안전망 서비스 본격 가동'이라는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역시 부실하다고 평가했다.
교과부는 학생의 위기상황 발생 시 즉각 출동해 대처할 수 있도록 학교 폐쇄회로(CC)TV 관리자를 학교장이 지정해 주간에는 교무실, 야간에는 당직실에서 실시간 모니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임호선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성폭력 범죄자는 계획적이고 지능적인 범죄자로 CCTV를 피해 범행할 것이 자명해 CCTV의 예방 효과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과부는 수업시간 중 배움터 지킴이를 활용해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했는데, 대상 학교는 3분의 1에 불과하다. 2005년 도입부터 현재까지 5년간 전체 1만1,259개 초ㆍ중ㆍ고교 중 지킴이가 배치된 곳은 29.2%(3,283개)뿐이다. 이마저 시ㆍ도교육청별 자체 예산으로 꾸려가는 중이라 모든 학교에 지킴이가 배치되려면 얼마나 걸릴 지 모른다는 게 교과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휴일에는 학교시설을 이용하는 지역사회 주민과 학교안전망 공동대처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괴한이 아이의 목에 흉기를 대고 학교 운동장에서 집까지 20분을 걸어가는 동안 주민 신고가 단 한 건도 없는 사회 분위기에서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대책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는 것을 예방의 제1원칙으로 제시했다. 임 과장은 "택배는 물건을 고객의 손까지 전달해주는데 아이들은 택배 물건만큼도 보호받고 있지 못하다"면서 "등하굣길에서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교사, 학부모, 아동안전 지킴이 등 어른들이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출입통제로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표창원 경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교사 학생 등 관계자와 정당한 목적의 방문객 이외에는 출입을 못하게 하고 있는데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면서 "출입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어떤 대책도 소용 없다"고 강조했다.
학교 건물에 범죄예방환경설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교무실을 가장 중간층 가운데, 교장실과 교감실은 범죄가 잘 발생할 수 있는 곳에 배치하는 등 자연감시가 잘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남상욱기자
김현우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