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 클라인 지음ㆍ이은진 옮김/살림Biz 발행ㆍ712쪽ㆍ3만원
"소비자는 바퀴벌레와 같다. 약을 뿌리고 또 뿌리면 곧 면역이 생긴다."(64쪽) 광고업계에서 버젓이 통하는 말이다. 과연 세계를 뒤흔드는 슈퍼 브랜드다운 배포다. 캐나다 반세계화 진영의 대표 주자 나오미 클라인은 문제의 핵으로 파고 든다. 그는 세상을 지배하는 슈퍼 브랜드들의 증식 논리에 내장된 폭력의 논리를 폭로한다.
1998년 나사가 우주정거장에 광고를 유치할 계획이라 밝히자, 기다렸다는 듯 펩시 사는 달 표면에 자사 로고를 비추겠다고 맞장구쳤다. 거대 기업 로고 즉 슈퍼 브랜드의 방약무인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최근 10여년 간 나이키, 마이크로소프트, 토미힐피거, 인텔 등 다국적 기업들이 천문학적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왜일까? "기업이 성공하려면 제품보다 브랜드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경영학의 통설이 됐다.
옷 안에 숨어 있던 상표를 옷 밖으로 드러내는 유행이 보수적 부유층의 스포츠웨어를 기점으로 일어났고, 결국 상표는 아예 옷 앞가슴 부분을 뒤덮을 정도가 됐다. 라코스테와 랄프 로렌이 쭈뼛거리며 내놓았던 아이디어는 오래지 않아 캘빈 클라인, 에스프리 등이 모방했다.
지구촌은 브랜드의 전쟁터다. 브랜딩은 이제 단순한 상표 전략을 뛰어넘어 광고, 후원, 배타적 사용권, 스폰서십 등을 포괄하는 현대 기업 활동의 핵심이라는 사실이 다양한 정보를 통해 확인된다. 일종의 악순환 구조다. 보다 많은 광고, 더욱 공격적인 시장 진출 등 브랜드 확대재생산 전략의 궁극은 바로 "뼛속까지 브랜딩하기"다. 그것은 곧 이 시대 기업들의 목표다.
브랜드 열풍은 저자에 의하면 종교적 광기 혹은 문화팽창주의와 마찬가지다. 저자는 브랜드를 먹고 자라난 세대가 겪을 '정신적 공간의 식민지화'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는다. 아직 딴 사람들이 미처 모르는 제품의 진가를 알릴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소비자들을 세뇌시키는 브랜드 광고는 그 법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책은 분석하지 않는다. 거대 기업이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영향력을 확산해 가는 메커니즘의 핵인 브랜딩 전략을 설명할 때도 저널적 시선으로 접근, 일반 독자들을 흡인한다. 발빠른 전개와 서술 방식 덕이다. 필리핀 마닐라의 한 경제특구에 잠입, 노동자와 인터뷰해 기업의 착취 구조를 밝히는 등 이 책을 위해 저자는 5년동안 지구를 누볐다.
그러나 특정 상표의 지배에 의한 문화적 획일화의 한편에는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도 공존한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소비자 운동가들의 반격 때문이다. 소비자 주권주의는 그 현실적 귀결이다. 만국의 소비자여 단결하라, 는 것이다.
2000년 캐나다에서 출간(원제 'No Logo')된 이 책은 그 해 가디언 지가 선정하는 최고도서상 후보에 오르는 등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책에서 제시된 전망은 이후 놀라울 정도로 현실과 들어맞았고, 지구촌 도처의 반세계화 외침과 맞물려 지금도 주목될 수밖에 없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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