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참패 후유증에 시달리는 여권 내에서 파워게임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파워게임은 청와대 핵심 참모들과 이들을 겨냥하는 청와대 외곽 세력간 대결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
파워게임의 단초가 포착된 것은 정운찬 총리의 9일 청와대 주례보고를 전후해서다. 정 총리가 이날 낮 이명박 대통령에게 주례보고를 할 즈음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한 참모가 언론을 상대로 "정 총리가 대통령을 독대해 조기 청와대 인사 개편 등 국정쇄신안을 건의할 것"이라고 흘렸다는 얘기들이 나돌았다. 이 말대로 정 총리의 건의가 이뤄졌다면 한나라당 소장파들의 국정쇄신 요구와 맞물리면서 정국에 상당한 파장을 낳을 수도 있었다. 정 총리가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인사문제까지 거론할 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으며, 쇄신안 또한 비상한 수준임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총리의 대통령 독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독대가 성사되지 않은 배경에 대해서도 여러 풀이들이 나왔다. 청와대 외곽 세력은 "일부 수석비서관들이 정 총리의 주례보고 때 배석해 사실상 독대를 블로킹한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주례보고 때 이 대통령과 정 총리가 차까지 마시면서 환담을 했는데 정 총리가 정말 인적 쇄신에 대해 건의할 생각이 있었다면 독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정 총리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핵심 참모 물갈이론에 공감하고 총대를 멜 생각이었는지 등은 오리무중이다.
총리실 참모가 아닌 외부 인사가 정 총리의 독대설을 흘렸기 때문에 정 총리가 실제로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알기가 어렵다. 정 총리의 측근은 "정 총리는 인사 쇄신을 건의할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청와대 외곽세력이 정 총리에게 '대통령을 만나서 청와대 인사 쇄신을 건의해달라'고 주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외곽 세력이 겨냥하는 인사들은 정무, 민정, 홍보, 국정기획 수석 등 청와대의 실세 참모들이다.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이 청와대 핵심 참모들을 겨냥하는 상황에서 외곽 세력은 '이번이 핵심 참모들을 물갈이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 것 같다.
청와대 참모진 개편 필요성을 강도 높게 주장하는 측은 "청와대 참모들이 이 대통령의 판단력을 흐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총리의 독대 추진 사실을 전한 외곽 인사와 정태근 의원 등 여당의 일부 초선 의원, 재선의 J 의원, 총리실의 한 참모 등이 정서적으로 이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 핵심 참모들도 자연스럽게 '동지'가 되면서 공동 방어에 나서는 상황을 맞았다. 평소 이들 참모들은 간헐적으로 갈등해왔지만 쇄신 바람이 거세지면서 자연스럽게 '한 배'를 타게 된 듯하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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