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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50년 전, 그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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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50년 전, 그 선생님들

입력
2010.06.1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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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고등학교 졸업 50주년을 맞았다. 지난 5월 개교기념일 홈커밍 행사에는 졸업한지 30, 40, 50, 60, 70주년이 되는 많은 동창이 참가했다. 우리 동기 동창들만 250여명이 모였다. 멀리 미국 캐나다 스위스 등에서 온 친구들도 50여명이 넘었다.

졸업 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친구들, 재학 중에 말 한마디 나눠 본 적이 없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우리는 반세기의 세월을 뛰어넘어 반갑게 손을 잡았다. 그리고 5일간의 행사를 끝내고 헤어질 때는 서로를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미국에서 온 한 친구가 엉엉 소리 내어 우는 바람에 마지막 행사는 눈물바다가 됐다.

고교졸업 50주년 여행에서

2박3일 동안 순천 담양 일대를 여행하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동안 살아 온 이야기, 학창시절 이야기, 선생님들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1954년 봄 중학교에 입학했던 우리는 6.25 전쟁 피란 길에서 폭격에 쫓기던 아이들이었다. 동족상잔의 참혹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아이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고 다짐하셨던 걸까. 선생님들은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셨고, 학교는 교육의 열정으로 뜨거웠다.

50년이 지났어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선생님들의 추억을 우리는 하나하나 풀어 놓았다. 사랑과 감사, 그리움이 가득 찬 추억이었다.

…"너희들 모두는 너만의 능력과 특기를 가진 소중한 존재들이다. 남의 재주를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재주를 키워서 이 나라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어라" 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시던 교장선생님…

…음악 미술 체육 작문 영어 등 각종 콩쿠르에서 상을 받은 학생들을 앞에 세우고 '승리의 노래'를 불러 축하해 주던 조회시간.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승리의 길'이 있음을 배운 가슴 뛰던 그 시간…

…우리는 예배시간마다 '참 아름다운 주님의 세계'를 불렀다. 그 많은 찬송가 중에서 왜 그 찬송가를 부르게 하셨을까.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이라고 노래하며 우리가 꿈꾸던 아름다운 세상…

…문학 콩쿠르에서 간신히 '가작'에 뽑힌 학생들을 단 위에 세우고 '승리의 노래'를 불러주던 조회시간. 교장 선생님은 "영국은 세익스피어와 인도를 절대로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도 너희들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말씀하셨지…

…나는 집이 어려워서 수예시간 과제물을 사는 것이 큰 걱정이었는데, 늘 때 맞추어 책상 서랍에 과제물이 들어있었어. 가사 선생님이 주셨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지만, 선생님은 전혀 내색을 안 하셨고, 나도 인사를 못했어. 졸업 후 10년쯤 지났을 때 선생님께 인사를 했단다…

…나는 고2때 복도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다가 선생님께 들켰지 뭐니. 다른 애들은 다 도망치고 어리버리한 두명이 잡혀 교무실 한구석에서 두 손을 들고 벌을 섰단다. 그날 담임선생님이 우리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어. "그런 일로 벌을 선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앞으로 복도에서 고무줄 놀이를 안 하면 되는 거고, 또 해도 괜찮단다." 어린 마음에 받았던 상처가 한 순간에 풀렸고 얼마나 그 선생님이 좋았던지...

"벌 서는 걸 창피해하지 말아라"

…무더운 여름 조회시간에 한 학생이 쓰러졌다.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꾸중하셨다. "앞으로는 힘이 들면 나무 그늘로 들어가거라. 아무리 조회시간이 중요해도 학생들이 쓰러질 때까지 견뎌야 할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50년 전의 선생님들을 회고하면서 우리는 오늘의 학생들을 생각해 보았다. 교재도 학용품도 부족하고 모두가 곤궁했던 그 시절 우리는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행복했는데, 오늘의 학생들도 행복할까. 그들도 졸업 50주년에 그리움으로 선생님의 사랑을 회고할 수 있을까.

고교 졸업 50주년에서 우리가 깨우친 것은 사랑의 힘이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학교에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 있어야 한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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