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정수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화끈하고 당차며 손해 볼 짓은 절대 하지 않는 도시여성. 그러나 실제는 이랬다. 화끈하고 당차되 손해 볼 짓 골라 하면서도 좋아라 하는 코스모폴리탄. 대표적인 패셔니스타(fashionistaㆍ뛰어난 패션감각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이자 국내 첫 공정무역패션브랜드 그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지난 주말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5층 그루 매장. 중년여성이 지나치다 매장 점원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알고보니 이 점원, 일일판매원으로 나선 변정수다. 특유의 시원하게 웃는 얼굴로 공정무역 패션을 소개하는 솜씨가 보통 아니다.
"제가 입고 있는 옷도 종이를 꼬아 만든 실로 짠 카디건이에요. 100% 수작업으로 만든 건데 너무 부드럽고 고급스러워요. 공정무역패션이라면 무턱대고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있는데 아니거든요. 지구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도 대를 물려 입을 수 있는 멋진 옷이 많다는 걸 알리는 게 제 임무죠."
변정수와 그루의 만남은 2006년부터 시작됐다. 그루는 진보적인 여성환경운동에 종사하던 이미영 대표가 빈곤국가의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정무역과 여성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패션사업을 연계시키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출발했다. 마침 해외에서도 디퍼 럭셔리(deeper luxury)족의 등장이 화제가 되던 때였다. 디퍼 럭셔리는 멋과 개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맹목적인 럭셔리 추구 대신 분명한 자기 관점 아래 패션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루는 사업 초기 공정무역패션을 알리기 위해선 유명 스타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판단아래 전직 모델 출신에 패셔니스타로 각광받는 변정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던 변씨가 선뜻 제안을 받아들였다.
"당시 유명 의류브랜드들이 임금이 싼 제 3세계에서 옷을 생산하면서 아동착취가 공공연히 이뤄지는 데도 모른 체 한다는 것을 알고 정말 놀랐어요. 나도 아이 엄마인데 옷 한 벌도 의식을 갖고 사야겠구나 생각했지요. 생산자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지구환경도 생각하는 윤리적 멋내기가 가능하다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당대의 패셔니스타가 패션의 윤리를 따진다는 건 넌센스라는 시각이 없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인 멋내기 행동에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는가 하는 회의론과 늘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는 패션은 속성상 상업주의적일 수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변씨의 생각은 다르다. 트렌드세터(trend setterㆍ유행선도자)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윤리적 패션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패셔니스타들이 많이 입어야 일반인들도 나도 한 번 입어볼까 하게 되잖아요. 멋 내지 말자는 게 아니고 정말 멋지게 내자는 것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연예계 스타들이 코디네이터가 가져다 주는 옷만 입지 말고 스스로 의식을 갖고 옷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값비싼 럭셔리브랜드 입는다고 럭셔리한 사람 되는 건 아니니까요."
변씨는 햇수로 5년째 그루의 홍보대사 활동을 하면서 갈수록 공정무역패션, 즉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지구환경보전에도 일조하는 착한 패션에 대한 호응이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했다. 공정무역패션이라면 흔히 값싼 제품으로 인식하던 것이 최근엔 정당한 가격과 세련된 디자인을 갖춘 제품으로 평가절상되는 추세에 가슴이 뿌듯하다고 했다.
"의식 있는 소비자는 절대 경제적으로 여유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한달에 꼭 한 번, 열 벌 살 때 꼭 한 벌은 착한패션으로 소비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한 거죠. 기부도 처음 하긴 어렵지만, 두 번째는 쉬운 것처럼 윤리적인 패션 소비도 처음이 어렵지 두번째부터는 가슴이 쭉 펴지고 스스로 당당해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답니다."
이날 변정수는 종이를 꼬아 만든 카디건과 네팔 전통 문양기법인 블록프린팅을 한 스카프, 재능기부를 통해 디자인된 티셔츠 등 그루의 인기 신상품들을 직접 구입했다.
■ 국내 첫 공정무역패션브랜드 그루는?
180명의 사회운동가들이 시민주주로 참가해 탄생시킨 (주)페어트레이드코리아에서 2006년 브랜드 작업을 실시하고 2007년 하반기 국내 첫 공정무역 패션브랜드로 런칭했다. 제품 디자인은 한국에서 하고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 라오스 등에서 공정무역을 통해 제품을 생산한다. 베이직한 아방가르드 컨셉트 여성복으로 100% 천연소재를 사용한 감각적인 디자인이 장점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78% 성장한 6억2,000만원선.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등에서 잇달아 초청판매전을 가질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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