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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시장도, 교육감도 선거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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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시장도, 교육감도 선거로 됐다

입력
2010.06.10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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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바라 밤, 빠라 밤….'

비장미(悲壯美)로 똘똘 뭉친 엔니오 모리코네(이탈리아 작곡가)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두 사나이는 지평선을 배경으로 우뚝 선다. 붉은 노을 아련한 저녁 무렵이라도 좋고, 뜨거운 태양 이글거리는 정오라도 좋다. 둘 모두 비장미를 돋워 주기엔 더 없는 시간. 흉터와 더러운 수염이 가득해 '나 나쁜 놈이오'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총잡이가 가소롭다는 듯 한 가닥 비웃음을 날리면 너무 소박해 시골 청년 같은 정의의 총잡이는 겁먹은 표정으로 오들오들 떨 뿐이다. 그리곤 어느 순간, 나란히 허리 쪽으로 손이 가면서 총을 꺼내더니 상대를 향해 '빵 빵'. 앗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 정의의 사도는 비틀, 악당은 '껄껄'. 안 되는데. 하지만 몇 초 후 절묘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기세 좋던 악당이 푹 쓰러지는 것이다. 역시 그렇지, 정의가 승리했다.

어릴 때 본 서부영화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어쩌다 케이블TV에 서부영화가 나오면 열 일 제쳐 놓고 본다. 완전 몰입해 나중에 악당이 픽 고꾸라지는 장면에서는 손뼉까지 친다.

필자가 서부영화 마니아가 된 이유는 악당과 정의의 사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전혀 마음에 갈등이 안 생긴다. 나쁜 놈은 100% 나쁜 놈이고, 좋은 사람은 100% 좋은 사람이다. 악당이 죽으면 참말 행복하다.

그런데 실제 세상에서 악당과 정의의 사도를 구분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6ㆍ2 지방선거에서 나란히 승리해 황야의 결투를 벌이게 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당선자를 보면 특히 그렇다. 오 당선자는 말 그대로 정수기 같이 맑은 사람이고, 곽 당선자는 필자가 몇 번 만나 봤지만 정말 호인이다. 반면 두 사람이 당선되자마자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서로를 공격하는 것을 보면 악당 같기도 하다.

두 사람이 논점으로 삼고 있는 초ㆍ중ㆍ고교 무상급식 문제로 들어가면 더 헷갈린다. "가난한 아이들이 밥이라도 마음 편히 먹게 하자"는 곽 당선자의 논리도, "그 돈을 다른 교육 예산으로 쓰는 것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오 당선자의 논리도 다 그럴듯하다.

그런데 필자는 요즘 이에 대한 고민을 뚝 끊었다. 국민들이 알아서 결론을 내려 줬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두 사람 다 승리했다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 둘 다 인정해 줬다는 뜻이 아닌가. 어느 쪽도 상대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천명이다.

자연히 두 사람이 해야 할 일도 명쾌해졌다. 공약에 보면 곽 당선자는 학생 중 100%, 오 당선자는 30%에 대해 무상급식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면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냥 중간 어느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면 된다.

두 사람이 버티면 결과는 뻔하다. 우선 곽 당선자는 예산 달라고 떠들 것이다. 다른 진보 성향 교육감까지 동원해 싸울 게 틀림없다. 그렇지만 오 당선자는 꿈쩍도 않는다. 곽 당선자는 마침내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이번 선거에서 여야가 바뀐 시의회를 동원해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오 당선자는 당연히 재의요구권을 발동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시의회가 3분의 2 찬성으로 확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싸우면 다른 일은 아무 것도 못 한다. 어느 쪽이 이기든 두 사람 다 패자다.

이제라도 두 사람이 이 문제를 놓고 당장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두 사람 모두를 당선시킨 국민의 뜻이다.

이은호 정책사회부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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