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미국 할리우드에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 소유의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내부 시사실을 찾은 적이 있다. 일반 극장과 다름 없는 많은 좌석과 넓은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스크린 왼쪽에 위치한 매점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영화 시사 전 한 아가씨가 나타나 줄 선 순서대로 핫도그나 팝콘, 음료수 등의 주문을 받았다. 물론 돈은 받지 않았다. 주로 관계자들이 진지하게 영화를 볼 듯한 시사실에서도 오락을 적극 장려하고 있는 셈이었다. 할리우드의 영화에 대한 인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뭇 영화제가 그렇기도 하지만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의 극장 입장 통제는 까다롭기만 하다. 음식물 반입은 철저히 금한다. 칸에서 팝콘을 입안 가득 씹으며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극장 내부에 화장실이 있는 점도 특이하다. 단 몇 초라도 영화를 놓치지 말고 스크린에 집중하라는 배려이자 독려처럼 느껴졌다. 영화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진지한 사고와 예우가 반영된 듯 했다.
각 나라의 극장 문화를 보면 영화에 대한 취향과 태도가 보인다. 오락으로서의 영화를 접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니 한국의 극장 문화는 미국에 가까울 듯 하다. 미국과 다른 점은 무색무취하고 개성이 없다는 것이다. 영등포든 강남이든 명동이든 판에 박은 듯한 멀티플렉스에서 거의 동일한 영화들이 관객과 만난다.
극장들은 공간으로서의 개성을 잃은 지 오래고, 상영작의 차별화를 꾀하지 않은 지도 한참이 됐다. 소수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 체인이 극장가를 쥐락펴락하다 보니 벌어진 현상으로 여겨진다. 몇몇 대형 체인 빵집들이 전국 방방곡곡의 빵 맛을 불과 몇 년 사이 획일화시킨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명동 중앙시네마가 지난달 31일 상영을 끝으로 76년 만에 문을 닫았다. 1934년 중앙극장으로 시작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관과 신사' '더티 댄싱' 등을 상영하며 사랑을 받았으나 대형 멀티플렉스의 공세를 견디지 못했다.
수익성을 최우선 가치로 치는 이 사회에서 돈 못 버는 극장의 퇴출은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겠지만 골수 영화 팬들은 중앙시네마의 퇴장이 아쉽기만 하다. 오랜 역사도 역사지만 중앙시네마는 최근 몇 년 동안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등을 상영하며 '영화 사랑방'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작은 영화들과 그들의 팬들로선 든든한 후원자 하나를 잃은 셈이다. 대형 멀티플렉스가 내세운 표준화와 편의성이라는 이름의 횡포에 밀려 영화의 다양한 맛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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