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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내면 찍히는 대한민국/ "괘씸죄 걸리면 끝장"… 규제 개혁은 딴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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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 내면 찍히는 대한민국/ "괘씸죄 걸리면 끝장"… 규제 개혁은 딴나라 이야기

입력
2010.06.09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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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개혁이 왜 늘 제자리 걸음이냐고요. 민원이라 얘기하는데도 오히려 보복을 당하기 일쑨데 누가 나서겠습니까."

이민화(사진) 기업호민관이 최근 밝힌 규제 개혁 성공의 전제 조건이다. 어떤 규제가 가장 문제이고 무엇부터 개혁해야 하는 지를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는 당사자는 바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인데, 이들이 보복이 무서워 할 말도 못한다면 실질적인 규제 개혁은 영원히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사실 중소기업청 기업호민관실에는 정부 부처나 공무원의 보복 사례들이 연일 접수되고 있다. 한 정보통신기기 제조 업체 A사는 인증기관 단축을 요청했다 오히려 더 인증이 늦어져 큰 피해를 봤다며 기업호민관실을 찾아 왔다.

현행법상 정보통신기기를 제조, 판매하기 위해서는 지정 시험기관에 의뢰해 형식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긴급한 주문을 받은 터라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 해당 기관에 찾아가 시험 성적서를 빨리 발급해 주도록 민원을 낸 것.

그러나 해당 시험기관 담당자는 오히려 보완 자료 등을 요구한 뒤 시험이 완료됐는데도 시험 성적서를 발급하지 않다 법정 소요기간인 55일을 끝까지 채운 뒤에 이를 처리했다. 결국 이 업체는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거래도 중단됐다.

자동차 부품 업체 N사는 불합리한 납세 고지서를 받고도 세무 조사가 두려워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속앓이를 기업호민관실에 털어놨다. N사는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지만 대기업에서 개발 제품 도면을 넘겨 받아 금형제작 업체에 발주, 입고가 돼도 바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긴 힘든 실정이다.

금형을 이용해 부품을 제작한 뒤 대기업의 테스트 결과에 하자가 없어야 최종 양산 승인이 나기 때문. 그런데 통상 이 과정이 길면 6개월이 넘다 보니 N사는 금형업체에서 금형을 인수한 후가 아닌 양산 승인 시점에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한다.

이에 대해 세무서에서는 기한 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았다며 가산세를 부과했다. N사는 세무서를 찾아 사정을 얘기하자 담당자는 법과 규정에 따라 한 것이며 만약 이의 신청을 하면 업체만 손해를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N사는 겁에 질려 발길을 돌렸다.

종업원 20명과 함께 휴대용 산소캔을 제조하는 B사도 억울함을 참고 있다. B사는 국내외 틈새시장을 개척, 미국과 일본 등에 수출 계약까지 따 냈다. 그러나 산소 관련 제품은 위험물로 분류돼 수출을 위해선 관계 기관으로부터 검사를 받아야 하고, 물량에 관계없이 단독 컨테이너에만 적재해야 한다.

휴대용 산소캔의 경우 폭발 위험성이 거의 없어 위험물 검사를 받는 것이 과도한 측면이 있고 단독 컨테이너 조항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할 수 없이 검사 요청을 했다. 그러나 검사가 지연돼 결국 수출 계약은 깨지고 말았다. B사 관계자는 "민원을 제기할 경우 당장 다음 검사에서 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어 이의 신청을 포기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 호민관은 "정부의 규제 애로 신고와 관련, 보복을 입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에 '모르겠다'는 대답이 42.8%를 차지했는데, 이들 업체 중 상당수는 이미 보복 피해를 입고 애매한 대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이 마음 놓고 민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제 기관 및 담당 공무원이 민원인에 대해 보복할 수 없도록 하는 입법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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