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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의 희망, 불도저에 꺾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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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의 희망, 불도저에 꺾이나

입력
2010.06.0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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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42)씨는 올 3월 딸(11)을 일반학교에서 대안학교로 옮겼다. 박씨는 "성적이 안 나오면 매질을 하고, 30여명의 아이들에게 똑같은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는 교실에서 아이가 힘들어했다"고 했다. 결국 아이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학교를 찾아 서울에서 경기 광명시로 이사까지 감행했다.

올 초 일반초등학교를 졸업한 김희민(13)군은 공립중학교 대신 비인가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김군은 "쌀뜨물로 설거지도 직접 해야 하고,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고 교실에서 비가 새는 등 많이 불편하지만 일반학교에는 없는 자유가 있다"고 자랑했다.

입시로부터의 해방과 인성교육을 꿈꾸는 대안학교인 볍씨학교는 2001년 3월 광명 YMCA가 설립했다. 12명으로 시작한 학교는 현재 초ㆍ중등과정이 96명으로 10년 새 학생수가 10배 가까이 늘었다. 유치원생도 90명이나 된다. 비인가라 졸업을 해도 학력인증을 받지 못하지만 대안교육의 취지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학교가 곧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볍씨학교의 교과과정은 특별하다. 일반학교가 국영수 중심의 입시위주인 반면, 이 학교는 국어 수학 등 기초학습뿐 아니라 농사와 요리, 글쓰기, 인생지도 그리기 등의 체험과 표현학습이 중시된다.

교육환경도 다르다. 반듯한 콘크리트건물인 일반학교와 달리 볍씨학교는 컨테이너박스와 벽돌 나무 등으로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지었다. 뒷산이 있고, 주위엔 논밭이 펼쳐져 있다. 아이들은 자전거동력을 이용해 전기를 발생시키고, 태양열장치도 손수 제작했다.

유치원 때부터 이곳을 다닌 김지윤(15)양은 "책상과 교실까지 모두 직접 만들고, 서로 돕고 또 환경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보니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습관이 배인 것 같다"고 했다. "국가에서 인정해주지는 않지만 10년간 학교에서 배운 건 그 어느 것보다 값지다"고 자부심도 내비쳤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학교부지(약 3,305㎡)가 그린벨트 지역에서 해제되고 보금자리주택 부지로 선정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비인가라 학교가 아닌 시설로 분류돼 내년 11월까지는 학교를 옮겨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법적 근거가 없어서 어떤 지원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비단 볍씨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변에 있는 국내최초 발달장애인 비인가 대안학교인 큰나무학교와 산어린이학교 학생 1,000여명도 다른 곳으로 내쫓길 처지다. 이영희 볍씨학교 사무총장은 "인가 대안학교나 일반 공립학교는 교육청 지원을 받아 학교 부지를 확보하거나 보호받을 수 있지만 우리 같은 비인가 대안학교는 어떤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전국의 대안학교 100여곳 가운데 이처럼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인가 학교는 70여 곳, 학생수는 대략 3,000여명으로 인가를 받은 대안학교보다 많다.

현행 '대안학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규칙'은 교사(校舍) 면적기준을 일정 규모 이상(초등학교의 경우 학생 1인당 3.5㎡), 수업은 국민공통 기본교과를 50% 이상 편성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 교육감이 위촉하는 위원들로 대안학교설립운영위도 구성해야 한다. 대안학교 관계자들은 "정부가 요구하는 대안학교 설립요건은 결국 대안학교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미(未)인가란 표현을 쓰지만 대안교육 활동가들은 인가를 자발적으로 안 받았다는 의미로 비(非)인가라고 부른다.

볍씨학교를 비롯한 대안교육연대는 12일 '대안교육제도화 토론회'를 열고 교육과학기술부 등에 비인가 대안학교 관련 조례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대안교육기관 등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김춘진(민주당) 의원은 "대안학교에 가는 학생 수가 갈수록 느는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며 "비인가라 하더라도 엄연히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임을 감안해 교육권 등 최소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볍씨학교는 속절없이 철거돼야 한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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