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시내 곳곳의 사거리에서 월드컵 출전국의 깃발을 흔들며 구매를 구걸하는 풍경은 매우 익숙하다.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흑인들은 신호 대기 차량에 득달 같이 달려들어 구매를 호소한다. 몇몇 백인들은 창문을 내려 가격을 물어본다. 보통 깃발 한 개당 50~100랜드(약 8,000~1만6,000원)를 부른다. 하지만 동양인들의 경우 흑인들이 혹시나 나쁜 마음을 먹을까 두려워 창문조차 내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도로의 사거리뿐 아니라 식당가의 주차장 등에도 깃발을 팔러 다니는 흑인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월드컵 특수' 때문이 아니라 남아공의 참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단면이라 애절하게 다가온다. 하루 끼니를 때우는 것도 힘겨운 흑인들의 실상은 여전히 흑백 갈등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아공은 1948년 네덜란드계 백인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당이 단독 정부를 수립한 이후 강력한 흑백 분리정책이 실시됐다. 극단적인 흑백차별정책으로 불렸던 아파르트헤이트가 1994년 붕괴됐고, 같은 해 5월 최초의 흑인 수장인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부임하면서 남아공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흑백인종의 화합을 시도했던 만델라 전 대통령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6년이 지난 지금에도 인종차별과 흑백 갈등은 여전히 남아있다. 남아공 인구의 흑인 비율은 82% 정도. 하지만 대부분이 무직이고, 일용직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흑인들이 다수다. 설사 흑인들이 일자리를 구했다고 해도 백인과의 봉급의 차이는 10배에 달한다. 흑인 종사자의 한 달 평균 수입은 30만원.
남아공에서는 흑인 정권 수립 후 의사 쿼터제가 큰 이슈가 됐다. 흑인 의사를 원했던 시민들의 바람으로 의대에 의무적인 흑인 쿼터제가 도입됐지만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다. 남아공은 최초로 심장 이식 수술을 성공하는 등 세계적인 의료 기술을 자랑한다. 하지만 흑인들이 이러한 세계적인 수준을 이해하고, 수술을 집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로 인해 불신이 가득한 백인들은 흑인 의사에게 절대로 진료를 받지 않고 있다.
이뿐 아니라 남아공에는 공무원 쿼터제 등이 있어 흑인들의 취업을 배려하고 있다. 하지만 흑인과 백인은 좀처럼 융화되지 못하고 있다. 백인들과 흑인들은 각자의 마을을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고, 흑인들의 주거지인 타운쉽은 지금도 존재한다.
더반(남아공)=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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