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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라인란트 모델과 PIGS 국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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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라인란트 모델과 PIGS 국가들

입력
2010.06.0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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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취리히에서 융프라우를 거쳐 제네바로 여행을 하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독일과 가까운 취리히에서는 독일어가 주로 통용되고 도시의 분위기 역시 독일풍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상점이 대부분 문을 닫아 거리가 썰렁하고, 술마시고 놀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 반면 프랑스와 가까운 제네바는 파리와 유사한 느낌이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새벽까지 술과 음식, 대화를 즐긴다. 게르만계의 경우 근면 성실하고, 라틴계는 먹고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인구 800만명 정도의 소규모 국가에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어 등 다수의 언어가 사용되고, 지역별로 문화의 차이가 극명한 것이 신기하다.

지금 남유럽 국가들이 재정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른 바 남유럽 불량재정 4개국인 PIGS다. 그리스는 라틴계는 아니지만 지리적, 문화적으로 라틴계와 닮은 꼴이다.

반면 유럽의 게르만계 국가들은 재정위기의 태풍에서 비껴나 있다. 독일을 필두로 스칸디니비아 3국, 베네룩스 3국 등으로 일부 학자들은 이들을 '라인란트 (Rheinland) 자본주의' 모델을 도입한 국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라인란트는 라인강을 중심으로 양쪽에 널리 펼쳐져 있는 지역으로 흑자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의 저서 (문학세계사 발행)를 보면 남유럽 국가들의 허술한 국가시스템이 잘 나타난다.

"미국에서 기업체를 설립하려면 4가지 절차만 필요하고, 기간도 4일, 비용은 166달러다. 스웨덴도 664달러에 불과하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5가지 절차에 53일, 3,693달러가 든다. 이탈리아에서는 5,012달러, 그리스에서는 1만218달러가 필요하다.….미국에서 부도수표 회수시 법원 판결을 받는데 5주, 집행하는데 2주가 걸린다. 이탈리아는 2년, 프랑스는 6개월이 소요된다."

남유럽 국가들이 혁신을 하지 못한 채 활력을 점차 잃고 있다는 것을 미국, 스웨덴 등과 비교해 꼬집은 사례다. (물론 프랑스는 PIGS에 속하지도 않고 아직 재정위기 조짐도 없다.)

미국 역시 금융위기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나, 혁신이라는 부분에서는 유럽과 비교할 때 여전히 압도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랬고, 최근에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만든 아이폰, 아이패드 등이 세계 시장에 큰 충격을 준 것이 단적인 예다.

특히 미국은 부를 중시하는데 비해 유럽인들은 빈곤과 불평등에 더 관심을 쏟는다. 유럽인들은 사회보조금이 줄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미국인은 무엇보다 세금이 오르는 것을 참지 못한다는 것이 기 소르망의 지적이다. 유럽이 재정위기를 겪는 근본 원인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어떤 체제, 모델이 우수한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진행중이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지 않고, 혁신을 게을리하고, 경쟁보다 불평등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면 PIGS 국가들과 유사한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들 국가처럼 경제 쇠퇴기에는 기득권층의 이익은 오히려 보호되지만, 젊은이, 교육받지 못한 사람, 아웃사이더들은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기 소르망의 충고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조재우 산업부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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