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건전한 '중도' 지대가 제대로 서지 않아 겪는 몸살은 엄청나다. 특히 중도의 부재로 인한 대립의 격화는 국민통합을 해치고,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갉아 먹는 주범이 되고 있다.
중도의 가치가 잘 작동하지 않아 빚어진 국가적 갈등 사례는 부지기수다. 최근에도 세종시 수정안 갈등,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찬반 논란, 법원과 검찰의 갈등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나 복수노조 허용 문제 등을 둘러싼 노사정간 갈등도 같은 맥락이다.
갈등의 원인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차치하고, 이런 문제들은 차분히 소통하면서 양 극단의 이견을 가운데로 끌어당겨 절충점을 모색할 수 있는 사안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파열음만 키웠다. 이뿐 아니라 멀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큰 홍역을 치렀고, 미디어법 갈등은 이념대결 양상으로까지 번졌다. 따지고 보면 모두 중도의 가치와 상호 소통의 중요성을 소홀히 한 데에서 중요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가운데가 튼튼한 이른바 '포물선의 사회'가 건강한 사회인데 우리는 전쟁과 분단 등을 겪으며 중간지대의 말없는 다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작았다"며 "이는 이념적 극단의 목소리만 키우게 되고 정치, 사회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갈등으로 인한 비용은 상상 이상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09년 6월 발표한 '한국의 사회갈등과 경제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갈등 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국 중 터키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는 특히 우리나라의 갈등지수(0.71)가 OECD 평균(0.44) 수준으로만 완화돼도 국내총생산(GDP)이 27% 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2009년 기준 우리 나라 GDP가 1,063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연간 갈등 비용이 무려 300조원에 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권 등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사회 지도층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것에 대한 비판이 많다. 특히 국회에서의 대결 정치 심화는 의원들간 이념적 간극을 증가시키고, 이것이 또 갈등 증폭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부른다는 게 큰 문제다.
실제 이내영 고려대 교수의 '한국의 이념 갈등과 이념 지형의 변화' 논문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이념성향 분포를 조사한 결과, 자신의 이념성향을 '중도'라고 답한 의원의 비율이 16대 국회 61.9%, 17대 35.4%, 18대 22.8%로 갈수록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일반 국민을 상대로 조사해보면 중도의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정치권 등 엘리트 계층의 이념적 양극화가 심해져 갈등 증폭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우선적으로 정치권이 중도의 가치를 인식하고 간극을 줄이며 갈등을 통합 조정하는 본령에 충실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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