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 위기와 유럽발 재정 위기 속에서도 유독 한국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는 배경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러가지 설명들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정부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민간이 어려울 때 정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었다. 지난해 경제 성장에서 정부 부문이 차지한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던 게 사실이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이미 우리 기업들이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쳤다는 점도 빼 놓을 수 없다. 상시 구조조정이 체질화한 덕에 웬만한 충격엔 꿈쩍도 하지 않을 만한 맷집이 생겼다. 특히 외환위기 당시 학습 효과 덕에 대량 실업 사태나 투자 급감 등의 부작용이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한국식 오너십 경영에 주목하는 이가 늘고 있다. 주인이 확실한 회사가 결국 위기에 강한 면모가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 글로벌 기업과 우리 대기업의 가장 큰 차이는 결국 얼마나 길게 보고 기업을 운영하느냐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 CEO의 경우 임기가 적으면 1년, 길어야 3년에 불과,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고 중장기 투자엔 소홀할 수 밖에 없다.
임기 중 경영 수치를 어떻게 개선, 자신의 이름 값을 높여 더 많은 연봉을 줄 기업으로 옮기느냐 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일 뿐이다. 이 때문에 유명 해외 CEO 대부분은 가장 인정사정 없이 인력 구조조정의 칼을 휘두른 이들이다.
그러나 한국 대기업의 오너들은 단기적인 성과보단 늘 10년 후, 30년 후를 생각한다. 이 때문에 해외 기업에선 불가능한 대규모 중장기 투자가 우리 기업들에서는 가능했다. 삼성이 1990년대 전후 일본 기업들이 머뭇거릴 때 과감하게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단행, 반도체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오너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대ㆍ기아차는 다른 자동차 기업의 수뇌부가 몇 차례나 바뀌는 동안에도 일관되고 지속적인 품질 경영으로 승부를 건 것이 지금의 입지를 굳히게 된 가장 큰 배경이다. LG와 필립스의 합작사로 출발했던 LG필립스LCD가 결국 LG디스플레이가 된 사례도 흥미롭다. 출범 초기 경영 실적이 다소 악화하자 필립스는 곧바로 지분을 털고 발을 뺐다. 그러나 LG는 필립스의 지분까지 넘겨 받아 계속 투자했고, 이후 LG디스플레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변했다.
물론 우리나라 대기업의 오너십 경영은 계열사간 순환 출자를 통해 한 자릿수 밖에 되지 않는 지분으로 모든 계열사를 과도하게 지배하는 적잖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한 순간 오너의 잘못된 판단이 그룹 전체의 리스크로 번질 위험성도 항시 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구조상의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특히 한국 기업들의 경영관은 대부분 유교적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고, 이러한 도의적 가치를 오너들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너들은 단순히 많은 돈을 버는 것뿐 아니라 중용의 덕과 군자의 도를 무의식적으로 지향하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이 사회적 기업과 재능 나눔(프로보노)을 적극 지원하고 있고,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300만 일자리 창출을 위해 헌신적인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물론 기업 구성원도 마찬가지이다. 회사를 마치 집안처럼 생각하며 헌신한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이 위기 시 외국인의 눈으로는 이해할 없는 국가적 통합의 힘을 보여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수직적인 상명하복식의 경영이 창의력과 소프트 파워가 중요한 2010년의 한국 경제에 과연 얼마나 유효할 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또 제 아무리 뛰어난 혜안의 경영자라고 해도 그 구성원이 혼신을 다해 따라 주지 않는다면, 무수한 현장 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없다면, 그 어떤 성과도 낼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일사분란함보다는 자율과 상상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오너들이 잘 알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점차 직원들과 또 고객들과 직접 소통하려 애를 쓰는 오너의 모습도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다.
한국일보 경제ㆍ산업부는 창간 56주년을 맞아 이처럼 한국 경제계를 견인하고 있는 대기업 총수와 CEO 등 파워 리더들의 경영관을 기업별로 분석했다. 또 이러한 산업을 뒷받침하면서 보이지 않게 한국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금융기관 CEO의 리더십에 대해서도 살펴봤다. 나아가 한국식 리더십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리더로 거듭나기 위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짚어 봤다.
이제 한국의 리더는 세계의 리더다.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 당당한 글로벌 리더로 한국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를 이끌 날을 그려본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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