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엔 규제개혁 촉구 기업엔 투자확대 유도 일자리 창출에 힘쏟아
'숭덕광업'(崇德廣業)
우리나라 경제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3년째 이끌고 있는 조석래 회장의 서울 공덕동 효성 회장 집무실은 항상 열려있다. 누구라도 만나 소통하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그리고 그 문 안으로 들어서면 '덕은 숭상하고 업은 넓히라'는 뜻의 사자성어가 맨 처음 눈에 띈다. 선친인 만우 조홍제 효성 창업주가 조 회장에게 남긴 글귀이다.
덕을 쌓고 선행을 베풀면, 사업은 절로 번창하게 된다는 의미로도 해석한다. 실제로 그의 리더십은 숭덕광업, 이 네 글자에서 출발하고 있다.
전경련 회장은 결코 쉽지 않은 자리이다. 한국의 재계를 대표하는 만큼 국제적 인맥과 어학 실력 등이 뒷받침이 돼야 한다. 워낙 공식 행사 등이 잦다 보니 자칫 그룹 일에 소홀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가급적 맡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없지 않아 있다.
이처럼 모두 마다하고 주저할 때 조 회장이 선뜻 전경련 회장을 맡은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의 이익을 희생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사실 그룹 총수들 가운데 조 회장만큼 영어와 일어에 동시에 능하고, 국내ㆍ외 인맥까지 갖고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이미 전경련 회장이 되기 이전부터 한미재계회의 한국위원장, 한일경제협회 회장 등을 맡아 왔고, 2004년까진 1,100개 다국적기업이 참가하고 있는 태평양연안경제협의회(PBEC)의 회장까지 역임한 바 있다.
전경련 회장을 맡은 이후에도 그는 늘 덕을 생각했다. 정부에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규제 개혁을 촉구하면서도, 기업들에게는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활성화를 유도하며 중재자의 입장에서 양측을 쉬지 않고 오고 갔다.
규제 개혁의 가장 큰 성과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다. 글로벌 무한 경쟁 상황에서 국내 기업에만 적용되던 역차별 제도가 출총제라는 점을 정부에 꾸준히 이해시킨 결과였다.
자산합계 1조원 이상 기업집단 소속 중핵회사(자산 2조원 이상 회사)가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있는 한도를 당해 회사 순자산의 40%로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이에 따라 역사의 장으로 사라졌다. 또 선진국처럼 금융과 산업의 다양한 융합이 가능해야 한다는 점도 설득, 금산분리 완화도 이끌어냈으며 또 다른 숙원과제였던 수도권 공장설립 규제 완화를 성사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한국경제연구원과 전경련이 공동으로 규제개혁추진단을 구성, 무려 5,000여개의 규제에 대한 전수 점검을 통해 1,664건에 대한 규제개혁 방안을 도출해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기업인 출신의 대통령이 재계의 소리에 귀 기울인 측면도 있지만 조 회장의 역할도 작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그는 또 재계의 입장을 정부에 관철시키는 데 머무르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대ㆍ중소기업 상생과 일자리 창출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은퇴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중소기업에게 맞춤형 경영 자문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 '경영닥터제'와 '300만 고용창출위원회'가 대표적인 예다.
전경련은 2017년까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해마다 4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마련, 실행하고 있다. 실제로 30대 주요 그룹들은 대졸초임 삭감과 임원 임금ㆍ성과급 반납 및 삭감 등을 통해 지난해 당초 계획보다 1만3,694명(27.3%) 늘어난 6만3,821명을 신규 채용하는 데에 앞장선 것이 전경련이다. 총 근로자수도 다소 늘어, 해외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한편 조 회장은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5차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맞춰 'B20 회의'도 준비하고 있다. G20 참가국의 상위 20위 기업들이 참여하는 비즈니스 회의이다. G20회의와 더불어 B20회의를 통해 조 회장은 국가 브랜드와 한국 기업 이미지를 전 세계에 더 한층 높이는 계기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숭덕과 광업이 충돌할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숭덕을 위해 광업을 포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해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려다가 의도하지 않은 오해가 생기자 곧바로 이를 철회한 것. 당시 전 세계 경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하이닉스반도체에 아무도 입찰하지 않자 국가 경제를 먼저 생각하며 결단을 내렸지만 이로 인해 숭덕에 흠이 되는 일이 벌어지자 과감히 물러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효성 회장으로서도 상당한 광업을 실현하고 있다. 부친이 그랬던 것처럼 세 아들에게 각기 사업을 맡겨 발광다이오드(LED), 중전기기, 풍력 발전, 금융 비즈니스 등을 새로 일으키고 확대했다.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그의 리더십과 숭덕광업이 어디까지 이어질 지 앞으로도 지켜볼 일이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 효성 3세 경영인들의 약진/ 효성의 미래 여는 삼형제
효성의 3세 경영인들은 각자의 특기를 살린 사업분야에서 아버지 못지 않은 탁월할 경영 성과를 올리고 있다. 세 형제는 각각 섬유ㆍ무역, 중공업, 전략부문을 맡아 지난해 사상최대의 경영실적을 달성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우선 섬유와 무역 부문을 이끌고 있는 장남 조현준 사장은 섬유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섬유부문은 2007년 조 사장이 퍼포먼스그룹(PG)장을 맡아 흑자로 전환된 이후 해마다 큰 폭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스판덱스 부문은 중국, 베트남, 터키에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유럽의 고급시장과 신흥 섬유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이 덕분에 효성의 스판덱스 부문은 올해 세계 1위에 바짝 다가서 있다.
차남인 조현문 부사장도 중공업PG장으로서 중공업 분야의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고 있다. 중공업PG는 2005년 7,501억원이던 매출이 조 부사장이 맡은 2006년부터 실적이 개선돼 2009년 1조6,041억원을 달성하며 114% 이상 성장했다. 영업이익도 2005년 673억에서 2009년 2,434억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조 부사장은 초고압 송배전 설비의 해외시장 공략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중공업 부문 매출은 미국을 비롯해 아프리카, 중동 등 해외시장을 개척하며 전년 대비 15% 이상 늘어난 2조 3,000억원의 수주를 달성했다.
삼남인 조현상 전무는 전략본부 소속으로 그룹 신사업, M&A등 경영 전반에 걸친 컨설팅 역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그는 2007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차세대 리더로 선정됐고, 2009년 다보스포럼에서는 세계적 경영자들과 세션 패널로 참석해 주목 받는 등 글로벌 무대에서 더 유명하다.
조 전무는 메르세데스-벤츠, 도요타 등 외제차를 수입해 판매하는 딜러사업 진출과 이를 통한 금융 사업 확대, 굿이어와의 대규모 타이어코드 장기공급 계약체결 등을 주도하며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수입차 사업을 효성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내수 소비재 시장 공략 전략으로 추진했고 급격한 시장성장세를 정확히 예측해 당초 계획보다 빠른 흑자 전환을 실현하기도 했다.
이들 3세 경영인들은 효성의 미래 신성장 동력을 찾는데도 나름의 경쟁력을 쌓아가고 있다. 조 사장은 LED사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고, 조 부사장은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조 전무는 자동차 리스 사업과 연계한 캐피탈 사업을 확대하며 금융분야를 그룹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해가고 있다.
한편 효성의 전문경영인인 이상운 부회장은 2002년 그룹COO(Chief Operating Officer)에 취임한 뒤 3세 경영인들과 함께 효성의 가치를 크게 높이고 있다. 그는 1976년 효성물산에 입사해 평생을 효성의 성장과 함께 해왔으며 스판덱스, 중전기, 타이어코드 등 주력 사업의 확대를 이끌며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강희경 기자 k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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