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시간 17분. "브라보" 하는 탄성과 박수갈채가 13분 동안 이어졌다.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이 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 신관에서 초연한 롤랑 프티의 '젊은이와 죽음'이었다. 850석에 보조석까지 관객들이 가득 메운 극장 광경은 이 작품이 삽입된 영화 '백야'에서 기립박수가 터지는 전반부와 꼭 닮아 있었다.
무대는 낡은 다락방. 바흐의 파사칼리아 c단조가 장엄하게 흐르고 화가 청년이 침대에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다.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는 모든 신경을 몸에 집중한다. 공중 세 번 돌기 등으로 서서히 고조되는 그의 몸짓은, 예술가의 고뇌의 과정 같다. 대본을 쓴 장 콕토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사회상을 반영해 허무주의가 내재된 악마성 짙은 모던 발레를 구상했는데, 음침한 무대 설정도 그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
남자 뒤로 문이 열리면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독거미처럼 괴기스런 동작과 함께 등장한다. 이어지는 그녀의 음산하고도 매혹적인 몸짓은 가난한 예술가를 조롱하고 업신여긴다. 그녀가 떠난 뒤 그녀가 만들어놓은 올가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남자. 그가 사랑한 것은 죽음을 표상한 여인이었다. 쓸쓸한 죽음을 비추는 에펠탑의 눈부신 조명은 비극을 극대화시킨다.
64년 전 창작된 발레지만 지금도 여전히 감각적인 무대와 난도 높은 테크닉이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날 주역으로 데뷔한 스무 살의 남자 무용수 이반 바실리예프는 점프 등 테크닉을 완벽하게 소화했고, 여자 무용수 스베틀라나 자카로바의 몸과 턴아웃(골반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두 다리가 이루는 각이 180도가 되도록 하는 발레의 기본동작)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국립발레단은 이 작품과 롤랑 프티의 다른 대표작 '카르멘' '아를르의 여인'을 묶어 7월 15~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한국 초연한다. 롤랑 프티가 예술감독을 역임한 마르세유발레단이 1980년대 두 차례 내한한 적은 있지만, 한국 발레단이 롤랑 프티의 작품을 공연하는 것은 처음이다. (02)587-6181
모스크바=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사진 볼쇼이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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