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경미 지음 / 현대문학 발행ㆍ284쪽ㆍ1만2,000원
소설가 구경미(38)씨의 두 번째 장편이다. 첫 장편 (2008)에서 망각했던 상처의 기억을 되찾아 자아를 회복하려는 한 여성의 분투를 정교한 미스터리 기법으로 표현했던 구씨는 이번 소설에서 외국인 결혼 이민 여성을 등장시켜 한층 작품에 현실감을 더했다.
소설은 건설회사에 다니는 마흔여섯 살 유부남인 주인공과, 한국 남자와 결혼해 이민을 온 스물여덟 살 라오스 여성 '아메이'의 불륜을 다루고 있다. 가족들을 피해 도피 행각을 벌이는 이들의 관계가 더욱 문제적인 것은 아메이가 주인공의 처남과 결혼한 사이이며, 게다가 이 부부의 중매를 선 사람이 다름 아닌 주인공이란 사실이다.
4년 전 공사 현장 감독자로 라오스에 파견됐을 때 아메이를 처음 만난 주인공은 부유한 삶을 동경하는 그녀에게 한국어 학원 수강료를 대주고 급기야 한국에 데려오며 후견인을 자처해왔다.
독한 마음을 먹고 처신해야 할 판이건만 두 사람의 도피 행각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애초 불륜의 시작 자체가 즉흥적이었다.
오랜 해외 근무와 소심한 성격 탓에 가정과 회사 모두에서 겉돌고 있는 주인공에게 사업 실패 후 술로 세월을 보내는 남편을 만나면서 한국 생활의 환상이 산산조각 난 아메이가 불쑥 찾아왔고, 그날 두 사람은 밤늦게 술을 마시다가 여관에서 함께 밤을 보냈던 것.
"제일 먼저 떠오른 단어가 '구제불능'이었다. 다음이 '수렁'이었고, 그 다음이 '자포자기'였다. 그 다음은, 생각나지 않았고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할 수 없었다."(27쪽)
명분도 목표도 없이, 상대의 속을 긁는 유치한 말다툼을 벌이며 정처 없이 떠도는 두 사람의 모습을 작가 구씨는 긴장감보다는 나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간결한 문장으로 묘사한다. 이는 두 사람이 처한 출구 없는 암담한 현실을 독자에게 정서적으로 전달하려는 고도의 전략으로 읽힌다.
내용상 완벽한 비극에 가까운 이 소설이 그다지 무겁지 않게 읽히는 이유 역시 곳곳에 재치 있는 표현들을 심어놓은 구씨의 노련한 문장 덕분이다.
수중의 돈까지 떨어져 비루해져만 가는 불륜 여행을 끝낸 것은 아메이. 물심양면으로 자신을 후원했고 서툰 대로 진심으로 사랑해온 주인공을 남겨두고 그녀는 남편에게로 돌아간다. 체면도 버리고 처남 집에 찾아가 함께 라오스로 가자고 설득하는 주인공을 그녀는 매정하게 뿌리친다.
철저한 현실적 계산 아래 한국 사회에 안착하고자 하는 아메이는 그간의 한국소설에서 사회적 약자이자 피해자로만 묘사됐던 외국인 이주자의 전형을 깨는 생생한 인물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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