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말대로 사실상 패배한 승리였다. 6ㆍ2 지방선거에서 간발의 차로 재선에 성공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쩌면 앞으로가 더 지옥 같을 수도 있다. 구청장 25명 중 21명, 시의원의 75%가 야당인 사면초가 처지인 데다 4년 전과 달리 서울 시민의 절반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선거결과는 정권에 대한 전반적 실망과 반감의 반영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정치적 맹목이 아닌 이번 선거의 의미와 성격을 정확히 알고 투표를 했다는 점에서는 누구보다 오 시장 자신의 책임이 크다. 지금까지 오 시장이 펼쳐온 서울 시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시민이 절반이나 된다는 얘기이다.
지난 4년 동안 오 시장이 추진해온 서울 시정은 한마디로 아름답고, 세련되고, 낭만적인 도시였다. 거리와 건물의 모양을 바꾸고 한강과 주변을 개발해 서울의 가치를 높이겠다며 '디자인 서울'과 '한강 르네상스'에 매년 수 천억 원씩을 투입했다. 올해에도 서울시는'디자인 서울'사업에 1,040억원이나 쓰고 있다.
두 사업이 도시를 밝게 해 주는 것은 맞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외형만을 중시하는 낭비적 전시성 행정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년 내내 거리를 바꾸고 각종 행사를 열고 한강변을 뜯어 고치고 있지만, 정작 서울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그런 겉모습의 화려함이 아니라 실제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와 교육과 개발이라는 점을 이번 선거가 일깨워 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청계천 복원보다 대중교통체계 개선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를 되새겨야 한다.
구사일생한 오 시장이 앞으로 지향해야 할 길은 분명해졌다. 업적에 집착하는 외형적 정책보다는 구석구석을 잘 살펴 아직도 어두운 곳을 밝게 만들고, 시민들의 불편과 아픔을 덜어주는 생활시정을 펼쳐야 한다. 여소야대로 일방통행이 불가능해졌다고 마지못해 그런 행정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오 시장도 야당과의 대화를 통해 균형 잡힌 시정, 시민의 뜻을 반영한 시정을 펼치겠다고 했으니 어떻게 달라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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