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오크런트 지음ㆍ박인용 옮김/함께읽는 책 발행ㆍ388쪽ㆍ1만8,000원
'Ak vop sfermed pro spes maned, if om pobl, ne ei mnoka pfo an am lank.(만약 모든 국민이 똑같은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면 인류에게 얼마나 커다란 이익이 될 것인가)' 1899년 발명된 볼라크(Bolak)라는 인공언어로 씌어진 이 글귀처럼 사람들은 말이 서로 달라 생기는 불편함 등 여러 이유로 수많은 인공언어를 만들었다.
미국의 언어학자인 에리카 오크런트가 쓴 는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 보통의 언어가 아니라, 일부러 만들어 낸 인공언어에 관한 책이다. 80여개 국에 사용자가 있다는 에스페란토와 SF영화 '스타트렉'에 나오는 외계인 언어 클링온 등은 비교적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인공언어는 훨씬 더 많다.
인테르링구아(Interlingua), 이도(Ido), 글로사(Glosa), 글로바코(Globaqo), 노비알(Novial), 홈이디오모(Hom-Idyomo)…. 제약회사가 마음대로 짓는 약 이름처럼 들리는 이 언어들을 비롯, 역사상 등장한 인공언어는 9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실패작이 되고 만 것들이다.
저자는 과거에 출판된 인공언어 관련 문헌을 섭렵하고, 직접 에스페란토 클링온 등을 익혀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면서 인공언어와 이에 애착을 갖는 사람들의 세계를 조명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초의 인공언어는 12세기 독일 수녀 힐데가르트 폰 빙겐이 만든 링구아 이그노타(Lingua Ignota). 1,000개 가량의 단어가 남아 있지만 이 언어를 만든 이유는 분명치 않다.
저자는 언어의 발명이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언어 발명이 유행한 것은 17세기 유럽. 라틴어가 국제어로서의 위상을 잃어가고 수학, 물리학 등 과학이 발달하면서 기존 언어가 모호하고 체계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언어 발명에 뛰어들었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말을 폐지하려는 계획'은 이런 시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 후 프랑스어가 국제어가 되자 새로운 세계어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풍미하면서 다시 관심이 고조됐다. 루드비크 자멘호프가 에스페란토를 발명하게 된 것도 고향 폴란드에서 러시아, 폴란드, 독일, 유대인 등 네 민족이 싸우는 것을 보고 다른 민족을 적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은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공언어에 대한 관심은 2차대전이 끝날 무렵 영어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강력한 세계어가 되면서 다시 시들해졌다.
할리우드에서 클링온이 만들어지는 과정, 요정의 언어인 퀘냐와 신다린이 등장하는 작가 톨킨이 40여년간 인공언어를 연구해왔다는 사실 등 에피소드들도 흥미롭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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