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3월 15일, 구 소련군 정보 총책임자 디미트리 폴랴코프 장군이 간첩죄로 처형됐다. 61년 미 중앙정보국(CIA)에 포섭된 폴랴코프는 60년대 말 미얀마에 주둔할 때 중국ㆍ베트남군 정보를 CIA에 건네주는 등 주로 소련군이 수집한 중국 등 공산권 국가의 정치ㆍ군사 정보를 미국에 넘겨줬다. 74년 장군으로 승진한 뒤 그가 빼돌린 소련군의 탱크 요격용 미사일 기술 정보는 미국이 91년 걸프전 당시 소련제 탱크로 무장한 이라크군을 격파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됐다. 그가 25년 간 미국에 넘긴 자료는 파일 보관 서랍 25개를 채우고도 남았다.
■ 폴랴코프의 죽음은 미국에겐 충격이었다. CIA는 그의 정체가 탄로난 경위를 추적했지만 실패했다. 6년 뒤인 94년, CIA의 러시아 정보담당 책임자 올드리치 에임스가 체포됐다. 조사결과 에임스는 8년 동안 이중간첩 활동을 했다. 85년 주미 소련대사관 관리에게서 5만 달러를 받고 미 연방수사국(FBI)을 위해 일하는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2명의 이름을 알려준 이후 에임스는 CIA의 공작활동이 포함된 비밀문서와 미국에 포섭된 소련 정보 요원 및 군 간부 이름을 수백만 달러를 받고 소련에 팔아치웠다. 그 중에는 폴랴코프도 포함돼 있었다.
■ 에임스가 체포되자 제임스 울시 당시 CIA 국장은 "폴랴코프의 처형은 에임스의 반역이 초래한 가장 값비싼 손실이었다"고 애석해 했다. 러시아도 고위급 이중간첩의 체포가 뼈아팠을 것이다. 정치ㆍ경제ㆍ군사적 경쟁 상대국의 핵심 기밀 정보를 빼낸다면 전쟁의 승리는 물론 경제 발전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우방국, 적대국을 가리지 않고 펼쳐지는 각국의 첩보전은 그런 현실적 이익을 위해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특히 이중간첩은 가장 손쉽게 핵심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어서 각국 정보기관은 포섭과 색출에 전력을 기울인다.
■ 국가정보원 전신인 안기부의 대북 공작원 '흑금성'으로 활동했던 박모씨가 돈을 받고 북한에 군 기밀을 넘겨준 혐의로 구속됐다. 군 관계자도 박씨에게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수사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박씨는 결과적으로 이중간첩 활동을 한 셈이 된다. 울시는 에임스 체포 당시 "백악관과 정부의 전ㆍ현직 관리 10여명이 소련에 정보를 판 혐의가 있다"며 스파이 색출에 나선 바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안보의식 강화가 강조되는 지금, 박씨 사건은 정부와 군에 기밀 유출에 대한 경각심을 새삼 일깨운다. 보안은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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