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뚝뚝 떨어지는 유로화 가치 때문에 한국은행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수년간 달러화 가치의 하락을 염두에 두고 보유 외환의 다변화를 추진했는데, 남유럽 위기로 유로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달러화로 환산한 전체 외환보유액 규모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 4개월치 한 달 만에 날아가
3일 한은은 지난달 말 외환보유액은 2,702억2,000만달러로 전달보다 86억5,000만달러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런 감소 폭은 2008년 11월 이후 18개월 만에 가장 큰 규모다 외환보유액이 올들어 4월 말까지 88억8,000만달러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넉 달 동안 쌓은 외환보유액이 한 달 사이에 날아간 셈이다.
한은 관계자는 "보유외환의 운용수익은 늘었지만 유럽 지역의 재정위기가 부각돼 유로화와 파운드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이들 통화로 표시된 자산의 달러 환산액이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4월말부터 5월말까지 한달 간 유로화에 대한 달러화 환율은 7.5%나 폭락했고, 파운드화도 5.0% 가량 떨어졌다. 지난해 말과 비교화면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 가치는 14.6%, 파운드화 가치는 8.8% 절하됐다.
약세 지속되면 외환보유액 급감
유로화 약세는 보유외환 다변화 정책을 취해 온 한은에 큰 고민을 안겨 주고 있다. 한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외환보유액 가운데 금,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과 포지션 등을 제외한 외화자산의 미 달러화 비중은 2007년 64.6%에서 2008년 64.5%, 지난해 63.1% 등으로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국제환율 변동에 따른 보유 외화자산의 가치 변동을 완화하기 위해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등에도 분산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유로화 폭락세가 계속된다면, 보유액 다변화 전략은 보유액 급감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런 전략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규모 외환보유액을 쌓아 온 다른 경상흑자국의 중앙은행도 추구해온 정책이다. 그러나 유로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여타 중앙은행의 경우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는 추세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란과 러시아 등의 중앙은행이 유로화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유 외환 다변화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중국이 최근 6개월 만에 미 국채를 순매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한은의 선택은
그렇다면 한은의 선택은 뭘까. 이응백 한은 외화자금국장은 "시장 영향을 감안, 한은이 외화자산 구성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대답할 수 없다"면서도 "다른 중앙은행을 보면, 보유 외환 다변화라는 장기 추세는 유지하면서도 그 속도는 재검토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찾는 게 최근 경향"이라고 밝혔다. 다른 나라의 입장을 빌어, 한은도 다변화 정책의 속도 조절을 고민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러나 "지난해만 해도 유로화가 강세를 보여 국정감사 등에서 외환 다변화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며 "통화가치는 계속 변하고 각국의 재정상태도 언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변화 속도를 재검토하더라도 매우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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