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을 쓰는 이 시간엔 아직 최종 개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상관없다. 정치적 의미로 보면 이미 이번 6ㆍ2 지방선거의 결과는 일찌감치 나왔으므로. 16곳 광역단체장 가운데 6곳이 투표 직전까지 초박빙의 판세를 보였고, 투표 종료 직후 공개된 방송3사 출구조사에선 한나라당의 참패 결과가 나왔다.
개중에는 지역성이 배제된 수도권과, 한나라당의 아성인 강원ㆍ경남이 포함돼 있다. 교육감 기초단체장으로까지 확대하면 형세의 반전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이 정도면 여당이 요행히 박빙지역 몇을 건진다 해도 선거결과를 오독(誤讀)할 여지는 전혀 없다. 민심의 급속한 이탈이 가히 경악 수준이다.
북풍도 막지 못한 민심 이탈
우리 국민의 이념 성향은 통상 보수ㆍ중도ㆍ진보가 30:40:30 정도로 분류된다. 양쪽 각 30%야 어떤 상황에도 지지 정당을 고수하는 콘크리트층이므로 논할 대상은 아니다. 선거결과는 결국 현 정권의 탄생을 가능케 했던 중도층, 이념적 틀에 매이지 않고 비교적 합리적 판단을 하는 이들이 단 2년여 만에 대거 지지를 철회했다는 뜻이다.
알다시피 우리의 지방선거는 온전히 정권의 평가라는 점에서 국회의원 선거와 별반 차이가 없다. 자치단체장의 공천과정서부터 당선 후 정책 시행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중앙당ㆍ중앙정부에 예속된 구조에다, 선거과정에서도 후보의 전략이나 유권자의 판단 모두 정권에 대한 평가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은 딱 집권 중반기에 치러지는 선거다.
사실 한나라당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뜻밖의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크게 시달렸을 만한 주요 이슈들이 실종돼버린 '천혜'의 조건에서 치러졌다. 천안함이 아니었으면 세종시, 4대강, 교육ㆍ공직 부패, 권위적 정책운용 등 어느 하나 간단히 넘어갈 만한 이슈가 없었다.
물론 예전처럼 북풍이 건듯 불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 유권자마다 '삐딱'하게 먹었던 생각을 고쳐먹는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천안함 사건이 다른 이슈를 몽땅 휩쓸어가고, 특히 사건 이후 조사과정과 국내외 대응과정에서 이명박 정부가 나름 제대로 핸들링하고 있다는 평가는 한나라당에 적지 않은 힘을 실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표심은 이렇게 바뀌었다.
이쯤에서 노무현 정부 4년 차였던 2006년 5ㆍ31 지방선거를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불과 그 두 해 전 총선에서 탄핵역풍을 타고 일방적 승리를 거뒀던 열린우리당은 지방선거에서 선거 사상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다. 전북 단 한 곳에서만 당선자를 냈을 뿐 나머지 거의 전 지역에서 한나라당의 절반을 훨씬 밑도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시 진보진영까지 포함한 시민사회의 평가는 냉혹했다. 종합하면 ‘정권 취향에 맞는 지엽적 과제에만 편집증적으로 집착하면서, 비판 세력들을 적으로 몰아 정책적ㆍ정서적 폭력을 휘두르는 독선의 정치로 민생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정 영역에서 진통과 혼미만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실적 통합적 리더십의 결여가 민심 이탈을 초래했다는 결론이었다.
다시 절실한 통합의 리더십
지금의 정부ㆍ여당이 들어도 가슴 철렁한 지적이 아닌가. 설사 일정 부분 대외적ㆍ경제적 성취가 있다 해도, 국민이 그 못지않게 중시하는 것은 통합의 리더십과 여유의 정치다. 수없이 지적했어도 이 명백한 교훈을 현 정부는 배우지 못했다. 아니, 배우려 들지도 않았다. 도리어 갈수록 오만함이 두드러져 비판과 충고에 귀를 닫았다. 그토록 폄하하던 전 정부와 동전의 앞뒤처럼 닮아가고 있음을 그들 스스로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천안함 조사 발표 이후 청와대는 "천안함 이전과 이후 북한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완전히 다를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달라져야 할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6ㆍ2 지방선거 이전과 이후의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에도 교훈을 얻지 못하면 2년 뒤 총선결과는 더욱 암담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제 겨우 반환점에 도달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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