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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2/ 기고 - 투표를 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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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6·2/ 기고 - 투표를 하고 나서

입력
2010.06.0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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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10분, 전국투표율은 21.6%(11시 기준)에 불과했다. 서울은 17.6%, 우리 지역인 경기도는 19.6%로 꼴찌 경쟁 중이었다. 점심 때였기에 썰렁할 줄 알았다. 의외로 내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1학년 1반 교실 복도는 북적북적했다. 50여명쯤. 투표장에 줄 기다란 걸 처음 겪는 듯 "어, 줄 섰네!"라고 신기해하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 선거구는 주로 삼사십대 부부들이 전세 사는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졌다. 어린 자녀를 대동한 부모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은 부모와 함께 투표에 참여하고 그것의 증거를 제출하는 숙제가 있단다. 여기저기서 휴대폰을 눌렀다. 미래 유권자들의 표정이 훨씬 진지해 보였다. 주민등록증을 내고 본인임을 확인 받았다. 내 이름 옆에 사인을 했다. 1차 투표용지 넉 장을 받고 기표소로 들어갔다. 투표를 1차, 2차 나눠서 해보는 것도 처음인 듯하다.

열흘 전, 선거 공보용 책자가 담긴 봉투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두껍다'였다. 8개선거 후보자들의 홍보 책자는, 각각 무슨 선거에 참여하는 후보들인지 쉬이 구분할 만한 띠지나 묶음 같은 게 없었다. 제대로 인물 탐구를 하려면 유권자의 상당한 공부가 필요할 듯했다.

물론 후보자 혹은 운동원들을 질리도록 만났다. 출퇴근시 지하철역서 수도 없이 마주쳤고, 갑자기 나타나서 손을 내미니 악수했고, 도로에서 줄곧 날아오는 소리에 얼얼했고, 느닷없는 문자에 깜짝 놀랐고(내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하지만 내가 선거운동 기간에 만난 유권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시스템의 선거로는 '인물 보고' 투표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정당 보고 찍을 수밖에 없을 테다.

인물을 몰랐지만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정당만 보고 꾹 눌렀다. 정당이 없는 선거가 문제였다. '교육감 선거' 용지에는 네 명의 이름이 있었고, 다행히 지지하는 후보가 있었다. 쉽게 기표. 하지만 '경기도 교육의원'은 깜깜했다. 아무나 찍어주려다가, 아무도 안 찍고 말았다. '교육의원' 후보자들만큼은 공부해올 걸, 하고 자책했다. 2차 투표도 지지자에 기표하고, 정당만 보고 찍으니 금방이었다. 복도의 줄은 더 길어져 있었다. 투표 열기가 상승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지만, 여덟 장이나 되고 나름대로 갈등을 잠깐이라도 한다면, 투표 시간 자체가 길어질 수밖에 없을 테다.

몇몇 사람과 통화했다. 다들 비슷했다. 누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웠고, 지지자가 확실한 경우 말고는 정당 보고 찍었고, 시골의 아버지는 이런 말도 했다. "농촌에서 제일 바쁜 모내기철에 선거라니, 말이 되냐. 늙은이들이 투표장까지 가기도 버겁고, 투표율만 높여주는 시골 멍청이 짓도 끝났다니까."

선거구의 특수성 혹은 여덟 개나 되는 용지 때문이겠지만, 내게는 줄까지 섰던 투표로 기억될 테다.

김종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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