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를 먹을 수만 있다면/ 나의 시 속엔/ 입으로 혀로 탐닉하고 싶은/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는데."
지난해 이철성(42)씨가 낸 두 번째 시집 에 실린 시 '예술과 음식'은 가난한 젊은 예술가의 자기선언문이었다. 그가 이끄는 극단 '꽃'의 페인팅 퍼포먼스 '두 개의 벽'이 막 끝났다. 본인의 어법을 따르면 "공연과 시 짓기를 겸하는 예술노동자"답게 무대는 시적 이미지와 뜨거운 몸의 흔적으로 덧칠됐다.
5월 28~30일 홍익대 앞 극장 씨어터제로에서 사흘 동안 펼쳤던 공연이다. 언젠가 극작가 이강백씨가 "소멸에의 매혹"이라고 무대 예술의 요체를 밝혔듯, 50분여 열기의 끝은 허무하리만치 적요했다. '비주얼시어터컴퍼니'라는 말을 극단 이름 앞에 병기하는 이들의 무대는 공감각적 이미지들로 충만했다. 이씨가 낸 두 권의 시집 속 명료한 이미지들보다 더 감각적인 무대였다. 창단 10주년 기념의 뜻이 함께했다.
씨어터제로의 무대 공간을 절반으로 갈라 1부 'In the Paint, Dance'가 한 쪽에서, 2부 '자화상'이 반대쪽에서 공연됐다. 각각의 무대 벽 대형 스크린에는 미리 준비된 영상이나 빔 프로젝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영상이 투사됐다.
1부의 내용은 무대 벽면에 물감을 듬뿍 찍은 큰 붓으로 폐쇄 공간을 그리며 서로를 그 속에 가두려는 두 남자의 격렬한 몸싸움이었다. 무대는 난장판이 됐다. 이씨의 모노 퍼포먼스인 2부, 관객들은 의자를 돌려 반대쪽 벽을 응시했다. 그가 미리 입력해 둔 공연 장면과 그의 실연이 병치됐다.
"널 만나기 위해/ 널 만지기 위해/ 40년을 보냈다/ 너, 어딨니/ 너, 붉은 사과 속 같은." 영상 속의 이씨는 시를 썼고, 실제 무대의 이씨는 손바닥에 검은 물감을 듬뿍 찍어 벽에 사람 형상을 그렸다. 옆에 세워둔 마네킹을 끌어와 세웠다. 팬티 차림으로 온 몸을 물감 범벅으로 만든 그는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객석을 촬영했다. 신기해하거나 당황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됐다. 첼로를 닮은 몽고 현악기 마두금의 소리가 변형돼 갖가지 전자음향과 어울리며 기이한 영기를 피워올렸다. 그렇게 실제와 가상을 오가는 50분이었다.
3년째 이 무대를 펼쳐오고 있는 이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예루살렘의 전위예술학교인 'School of Visual Theatre'에 입학, 장르 해체 등을 공부했다. 첨단 매체와 시적 이미지, 육체의 즉물성을 아우른 이씨의 무대는 8월 세계 최대의 거리극 축제인 프랑스 오리악축제에 참가한다. 과천한마당축제, 하이서울페스티벌 등 국내 초청 무대도 이어진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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