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높았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은 1위. OECD는 올해 한국 성장률이 4% 중반에 달해 회원국 중 가장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5%대 성장도 자신하고 있다. 대기업 규제 완화와 사상 유례 없는 장기간의 초저금리 정책, 4대강 등 토목사업의 확대에 힘입은 것이다.
성장률 높아도 삶의 질은 꼴찌
빵 덩어리가 커졌으니 살림은 좀 나아졌을까. 며칠 전 OECD가 내놓은 '2010 통계연보'를 보면 한국은 노동시간(연간 2,256시간)이 가장 길었지만, 정부 재정지출 중 사회복지 비중(GDP의 6.9%)은 가장 낮았다. 열심히 일해도 복지 혜택이 열악하다 보니 자살률(인구 10만명 당 21.5명)은 가장 높고, 출산율(1.19명)은 꼴찌였다. 그만큼 우리네 삶이 고달프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방증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OECD 30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의 선진화 수준' 보고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복지 수준을 보여주는 '사회안전망'은 꼴찌, '약자보호제도'는 28위였다. 정부가 내놓은 중산층의 규모나 소득재분배 현황 등 각종 지표 또한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가 재벌ㆍ수출 중심의 성장정책을 추구한 지 어언 50년. 공급 능력이 떨어지던 산업화 초기 단계에는 성장이 고용과 소비를 늘리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졌다. 하지만 세계화가 우리 사회에 이식한 무한경쟁의 승자독식 시스템은 성장의 분배 기능을 갈수록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빈약한 복지재정을 확충하는 수밖에 없다. 세수를 늘리고 '개발' 대신 '복지'를 재정지출의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
한데 세수를 늘리자니 저항이 만만치 않다. 모범을 보여야 할 부유층은 주택 보유세를 조금만 올려도 '세금폭탄' 운운하며 반발한다. 세금이 국민들의 안정된 생활과 노후 보장으로 되돌아온다는 믿음을 주고 설득해야 할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감세정책에 '올인'하고 있다. 대기업과 부자들 세금을 깎아줘야 성장이 된다는 구시대적 논리다. 토목사업에는 수십 조원을 쏟아 부으면서 민생 복지 교육 등 공공지출에는 인색하기만 하다.
지방선거 투표일이다. 지방자치는 정치의 장이기 이전에 주민들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생활의 장이다. 우리 정치일정상 지방선거가 일정 부분 권력의 중간평가 성격을 띨 수밖에 없지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지역일꾼을 뽑는 것이다. 북풍(北風)과 노풍(盧風)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 삶의 질을 높일 후보를 골라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런 후보를 뽑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여야 모두 과거와 달리 지역개발, 성장 위주의 공약 대신 사회적 일자리와 교육 등 복지 공약을 적극 제기해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그래도 선거 홍보물을 꼼꼼히 살펴 보면 정답이 보인다. 개발 공약을 앞세우는 후보는 최우선 배제해야 한다. 재정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선심성 복지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도 찍어서는 안 된다. 백화점 식으로 너무 많은 공약을 내건 후보도 위험하다. 지난해 지방정부의 총 부채는 26조원, 평균 재정자립도는 53.6%에 불과했다. 재원조달 계획이 뒷받침되지 않은 장밋빛 공약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지방재정을 악화시킬 따름이다.
현실적인 복지 공약에 한 표를
그러면 어떤 후보를 뽑을 것인가. 개발 공약을 최소화하고 불요불급한 토목예산을 줄여 서민복지를 강화하는 후보라면 지방자치 정신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친서민 환경ㆍ복지 공약을 재정위기를 초래할 포퓰리즘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지방정부 예산의 80%가 건설ㆍ토목사업에 지출되는 지금의 구조를 고친다면 재원 조달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당진군수를 비롯해 4기 지방선거에 뽑힌 기초단체장 중 42%가 비리에 연루돼 기소된 것도, 도로 공항 호화청사 등 건설ㆍ토목사업에 엄청난 예산이 지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선거 홍보물을 꺼내놓고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자.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30분이면 충분하다. 나와 가족의 미래를 위해 그 정도 시간은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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