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강만길(77) 고려대 명예교수가 700여쪽에 달하는 책 (창비 발행)을 냈다. 한국사의 주체적 발전 가능성 규명을 위해 조선 후기의 상업 발달 과정을 분석하는 작업에서 출발, 분단 극복을 위한 통일운동사론 정립에 이르기까지, 60여년 간 한국 근현대사 공부의 한 길을 걸어온 그의 인생을 기록한 이 책에는 '강만길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자서전 출간에 즈음해 서울 종로구 낙원동 계간 '내일을 여는 역사' 사무실에서 강 교수를 만났다. '내일을 여는 역사'는 그가 역사 대중화를 목표로 2000년 사재를 털어 창간한 잡지다.
현실비판적 지식인의 길을 걸어온 대표적 인물이기도 한 강 교수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후 재직하던 학교에서 해직당했고, 군사독재 시절 몇 차례나 서재를 수색당한 경험에서 일기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역사가에게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기록'이야말로 존재의 의미를 해명하는 수단일 텐데, 그 시절에는 그것이 자신을 얽어매는 빌미가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서 을 "거의 기억에 의존해 썼다. 기억이 분명하지 않으면 분명하지않다고 썼다. 민주화 덕택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책은 2007년 5월부터 2년 동안 쓴 그의 기억의 기록이다. 그에게서 한국 현대사, 그리고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식민지배 청산, 분단 극복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_ 한국 현대사는 식민지배, 전쟁, 군사독재 등으로 굉장히 불행한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가에게는 훌륭한 사료이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역사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공부를 하다보니 우리 역사를 올바르게 가르쳐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지요. 급박한 시대를 경험하면서 역사를 보는 폭이 좀 넓어졌고요."
_ '해방 공간에서 찬탁, 반탁 운동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근현대사를 전공하면서도 어느 정도 객관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한다'고 쓰셨는데요.
"만약 한 쪽에서 '정치교육'을 받았다면 치우쳤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 공간을 비교적
제3자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너무 순진했거나 비정치적인 인간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_ 일부 역사학자들은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를 들어 식민주의가 꼭 경제발전을 저해한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일제의 한반도 지배는 어떤 차별점이 있습니까.
"아프리카나 미국 원주민들에 대한 유럽인들이 지배는,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비문명 지역에 대한 지배이고 영국과 프랑스의 인도와 베트남 지배는 다른 문명 지역에 대한 지배입니다. 그러나 한반도는 일본과 문화 수준이 비슷하고 같은 문화권이었기에 그 지배가 더 악랄하고 가혹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의 통치를 '식민지배'라기보다 '강제지배'라고 표현합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인도, 베트남 사람들에게 자기 말과 글까지 못쓰게 했나요?"
2005년부터 2년 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강 교수는 10년 만에 보수 정권이 등장한 이후 친일 문제에 대한 관심이 흐려지고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주의 역사학이 공격을 받는 상황을 우려하기도 했다.
_ '친일' 대 '저항'의 구도로 일제 강점기를 조명하면 당시 능동적으로 활동한 한국인들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생활인으로서 일제에 협조하고 월급을 받은 사람들을 친일파로 보자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젊은이들을 침략전쟁의 희생물로 삼으려 했거나, 고등계 형사나 일본 헌병이 되어 독립군을 잡으려고 혈안이 됐던 자들, 조선인을 2등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해 되지못한 온갖 논리를 펴고 다닌 자들을 응징하자는 것입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가려낸 친일파가 1,000명쯤 됩니다. 일제 때 한반도 인구가 2,200만명쯤 되는데 그 중 1,000명을 가려낸 것이에요."
_ 식민지배에 대해 한국이나 중국이 아무리 비판해도 일본은 결코 반성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21세기에는 지역공동체를 못 이루는 지역이 후진 지역이 될 것입니다. 유럽연합이 가장 먼저 나섰고, 동남아는 아세안(ASEAN)을 결성했습니다. 남미와 아프리카도 공동체를 결성하려고 하는데, 한중일은 그렇지 못해요. 그것은 일본이 지난 세기 한반도와 중국 침략에 대해 반성을 덜 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솔직히 시인하고 사과해야 합니다."
강 교수는 2007년 5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직을 마친 뒤 강원 양양군의 작은 아파트에 머물고 있다. 예전과 같은 적극적인 현실 발언은 삼가고 있지만, 냉각되고 있는 남북 관계의 전망을 묻자 그는 의외의 낙관론을 펼쳤다.
_ 책에 '역사가 정직한 행진만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화?역사는 반동의 시기를 경험한다'고 쓰셨던데요.
"역사 발전에는 지그재그가 있게 마련입니다. 지그재그 경로에서는 그 각(이념적 스펙트럼)이 넓어야 역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요. 각이 좁으면 극좌나 극우가 됩니다. 정권을 오른쪽에서 잡든 왼쪽에서 잡든 그런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_ 6ㆍ15 남북공동선언 당시 '역사는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감격하셨는데, 지금의 남북 관계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역사라는 것은 나선형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오른쪽으로건 왼쪽으로건 나선형으로 한 바퀴 돌고 나면 더 높게 올라가 있지 않은가요? 군사독재 시기나 냉전 시대로 회귀할 수는 없어요. 우리 사회의 민주화 역량이 커졌으니까요."
_ 식민지와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거의 퇴장하고 이제는 전후세대가 한국 사회의 주류입니다. 이들에게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단지 '한 민족이기 때문에'라는 측면에서가 아니라 보다 합리적 측면에서 설명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21세기는 평화주의, 지역공동체주의의 시대인데 우리만 동북아의 화약고라는 말을 들어서 되겠습니까?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 무대에 나서서 활동하는데, 자기 민족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세계인, 국제인으로 활동할 수 있을까요? 젊은이들이 왜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못하는지 솔직히 걱정됩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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