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저발전, 저성장의 원인을 마르크스주의로 설명하려는 종속이론과 해방신학은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행했다. 한국 사회의 성격을 미국, 일본 등 외세의 정치ㆍ경제적 식민지로 구명하려는 이론가들은 거기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문화이론가, 월터 D 미뇰로 미 듀크대 교수는 두 이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마르크스주의는 결국 서구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현실을 설명하는 이론이고 해방신학도 기독교 중심주의의 우산 아래 있다"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그린비 발행)의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지난달 26일 방한한 그는, 이 책에서 남미의 근대성과 식민성을 다른 틀로 분석한다. 기존 이론이 정치경제적 탈식민화에 초점을 맞춘 반면, 그는 식민지적 인식의 극복을 중시하며'인식의 불복종'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인식적 불복종'이란 기독교 복음주의, 산업적 근대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상징되는 유럽 중심적 사유체계를 넘어서는 사유방식을 의미한다. 그가 종속이론과 해방신학의 극복을 주장하는 이유다. 라틴아메리카,>
그에 따르면"라틴아메리카라는 개념은 남미를 식민화한 스페인이 앵글로색슨 아메리카(미국)와 자신들을 차별화하기 위해 19세기에 만들어낸 것"이다. 문제는 남미의 크리올(스페인과 원주민들의 혼혈) 지식인들은'라틴성'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 일이다. 그는 "크리올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원주민이나 흑인보다 우월하다고 강조하기 위해 '라틴성'을 내세웠지만 이는 결국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인식을 피식민 지배계층인 크리올들이 그대로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탈식민적 인식의 토대로 그가 고안한 또다른 핵심 개념은 '경계사유(border thinking)'다. 경계사유란 원주민, 흑인, 여성, 동성애자 등 '라틴아메리카'의 기존 개념에서 배제됐던 대상의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을 가리킨다. 안데스 원주민의 정치적 권리 회복을 주장하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당선, 아르헨티나에서 카리브해에 이르는 지역에서 아프리카 리듬의 복권 등은 경계사유의 실현 양상을 보여준다.
그는 "경계사유는 남보다 잘사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사는 것이 목표인 패러다임"이라며"남미뿐 아니라 세계화의 압도적 영향 아래 서구적 인식의 틀에 갇혀 있는 모든 경계국가들에게 유효한 인식의 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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