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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논쟁'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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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논쟁'의 가벼움

입력
2010.05.3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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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두 편의 연극에 대해 글을 썼다. 첫 번째 연극은 연극연출가 김아라씨가 대학로에서 공연한 '엘리펀트맨'이었다. 당시 신예 탤런트 정보석씨가 코끼리남자 역을 맡았는데 간호사 역의 여배우가 가슴을 과감하게 드러내 '화제'가 되었다. 두 번째 연극은 울산에서 처음 공연된 '미란다'였다.

연출가는 작정하고 연극의 끝부분에서 여배우를 알몸으로 출연시켜 '문제'가 된 연극이었다. 그 덕에 대학로까지 진출한 연극은 당시 마광수 교수의 '음란 시비'에 함께 휩쓸려 연출가가 구속됐다. 둘 다 20년 전쯤의 연극이다. 대구에 갔다가 후배의 권유로 연극 '논쟁'을 봤다.

이미 상업연극은 '화제'도 아니고 '문제'도 아니었다. 남녀 배우 4명이 모두 알몸으로 출연하는 '19禁(금)'을 보여주었다. '논쟁'에 대해 사전 정보가 없었기에 내가 받은 충격은 컸다. 그 충격에 비해서 연극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배우들이 벗은 것 외에는 '논쟁'이란 주제의식을 소화하지 못했다.

'논쟁'이란 이름으로 논쟁거리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란 의혹을 지울 수 없었다. 더욱 화가 난 것은 연극을 보는 내내 나 역시 '알몸출연'이라는 광고 문구에 홀려 객석에 앉아있는 중년관객이라는 사실이었다. 4만원이 넘는 비싼 입장료까지 내고.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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