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좋아하진 않지만, 이달엔 월드컵 경기와 나로호(KSLV-1) 발사로 우리나라의 세계 랭킹이 매겨질 것 같다.
오는 12일 열리는 그리스와의 본선 첫 경기는 월드컵 원정 첫 16강 진출 여부를 가를 분수령이며, 9일로 예정된 나로호 2차 발사는 우리나라의 항공우주기술 세계 10강 진입의 도약대가 될 것이다.
당당히 16강을 기대할 만한 실력과 팀웍을 만들기 위해 월드컵대표팀은 끊임 없는 담금질을 견뎌왔다. 하지만 우리 땅에서, 우리의 기술로 만든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발사하게 되기까지 우리 과학기술계가 걸어온 길 역시 담금질에 못지 않은 진창과 가시덤불의 연속이었다.
국내 항공우주기술 발전의 최대 걸림돌은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대한 국제적 견제였다. ICBM이 뭔가. 핵전쟁에 의한 지구 종말을 그린 영화 속에 흔히 등장하는, 사막의 지하 사일로(silo)에서 극광을 발하며 우주로 고요하게 솟구쳐 오르는 수백, 수천 개의 핵미사일들이 바로 그것이다.
ICBM은 보통 메가톤급의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이 대기권 너머 우주공간을 탄도비행한 뒤 대기권 재돌입 과정을 거쳐 초속 8km 내외의 가공할 만한 속도로 목표물을 타격하게 된다. 사실상 요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단 발사되면 그것으로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는 가공할 무기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미국 러시아 등 ICBM의 실전배치를 끝낸 우주무기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관련 기술의 국제적 확산을 규제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핵확산방지조약(NPT)과 함께, 발사체를 대기권 너머까지 올려 놓을 수 있는 로켓 기술의 이전을 규제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가 구축됐다.
사실 1993년 NPT 탈퇴 선언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는 북한핵에 대한 국제사회의 집중적 견제 역시 북한이 핵무기와 함께 사정거리 6,000Km 이상인 대포동미사일 같은 탄도미사일 개발을 병행추진함으로써 핵탄두 장착 ICBM 완성 우려를 사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ICBM 기술 이전에 대한 무차별적인 규제로 우리로서는 평화적인 항공우주기술조차 이전 받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는 MTCR 회원국으로서 탄도미사일 기준 사정거리 300Km를 넘는 발사체 기술을 해외로부터 이전 받는 게 애초부터 차단됐다. 러시아가 나로호를 우주공간까지 쏘아 올릴 1단계 로켓을 우리에게 팔면서 기술이전엔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기술개발은 유기적인 시스템조차 없이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난관 속에서도 대한항공은 발사체 시스템 조립과 도면, 지상 지원장비 설계, 제작 기술을 개발해왔다. 한화는 2단계 로켓의 고체연료 개발을 담당하면서 발사체 핵심기술인 추진시스템과 관련 제어시스템 기술을 일궈왔다. 이밖에 발사장 및 발사대 건설은 현대중공업이, 나로호 기체용 특수소재인 고강도탄소섬유는 한국화이바가 만들어냈다.
따라서 나로호 발사는 그 동안 진창 속에서 각개전투 하듯 일궈낸 우리의 독자적 항공우주기술을 총체적으로 시험한다는 막중한 의의가 있는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우리 항공우주기술의 미래인 나로호 발사도 성공하고, 월드컵 본선 첫 경기도 산뜻하게 이겨 기분 좋은 6월의 출발이 되길 기대해 본다.
장인철 생활과학부장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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