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나 조선 분야에서나 가능한 줄 알았던 '세계 1위' 자리를 5년 동안이나 놓치지 않은 기업, 더구나 민간기업 아닌 공기업이 있다. 대한민국의 관문인 인천공항. 인천공항은 지난달 '공항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전세계 131개 공항 중 1위를 차지했다. 받은 점수가 5점 만점에 불과 0.01점 모자란 4.99점. 34개 평가항목 중 단 2개 항목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을 빼고는 모조리 수위에 올랐을 정도로 압도적 1위다.
'신이 내린 직장'이다 '방만경영의 온상'이다 해서 공기업들이 틈만 나면 여론의 질타를 받는 상황에서 거둔 놀라운 성과다. 더구나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공항 상주기관 570여곳의 일체화된 서비스가 반영됐다는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속도가 최고 경쟁력
'세계1위'의 비결을 직접 확인하려 인천공항을 찾은 지난 27일. 이용객은 8만명 정도로 딱 평균 수준인 날이었다. 오전에 비교적 한산하던 공항은 오후가 되자 제법 붐비기 시작했지만, 1층 밀레니엄홀 전통문화공연장에 몰린 관객을 빼면 어디에도 긴 줄이 늘어서 있거나 사람이 몰려 있는 곳이 없었다. 보안 검색장과 출입국 심사장의 행렬도 길지는 않았다.
출입국 절차가 이처럼 물 흐르듯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는 데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 인천공항이 사전에 항공사 자료를 근거로 시간대별 이용객 수를 예측해 관련기관에 미리 통보해주는 '승객 예고제' 덕분. 법무부(출입국심사)나 세관에서 이 자료를 바탕으로 검색ㆍ심사대의 수를 탄력 운용하기 때문에 아주 붐비는 날이나 승객이 적은 날이나 실제 줄 서는 시간에는 큰 편차가 발생하지 않는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셀프 체크인(self check-in) 서비스'도 신속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정보기술(IT)와 생명공학(BT)을 접목한 '자동출입국심사 서비스'도 마찬가지. 이는 사전에 여권번호와 지문을 인식시켜 두면 법무부 심사관을 거치지 않고 혼자 출입국 심사를 마칠 수 있는 체제다.
그러다 보니 인천공항의 출입국 소요 시간은 출국 16분, 입국 14분으로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목표 기준인 출국 60분, 입국 45분을 각각 4분의1, 3분의1 수준으로 단축한 것이다.
허브공항 경쟁서도 유리한 위치
현재 한국의 인천공항, 중국 상하이 푸동공항, 일본 도쿄 나리타공항 등 3개 공항은 동북아 '허브공항'자리를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허브공항의 승부는 결국 환승객 유치에서 나는데, 인천공항은 이를 위해 여객터미널 4층에 무료로 샤워 시설, 인터넷, 놀이방 등을 갖춰놓고 있다. 워낙 시설이 뛰어나고 기본으로 제공되는 서비스가 많다 보니, 인천공항은 전세계 항공여행객들이 공항 이용 후기를 공유하는 인터넷 사이트(htwww.sleepinginairports.net) 에서 '노숙하기 좋은 공항'으로 뽑히기도 했다. 인천공항에서 만난 호주 여행객 트레버ㆍ비키 브로엄 부부는 "매우 웅장하고 현대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며 "시드니나 멜버른 공항에 비해 공간이 넓고 화려하다"고 감탄했다.
빠른 처리 속도와 한발 앞선 서비스로, 인천공항은 동북아시아 허브 공항 경쟁에서도 매우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우선 취항한 항공사 62개, 취항도시 177개로 동북아 어느 공항보다 거미줄 연결망을 자랑한다. 400만원인 여객기당 착륙료도 푸동(780만원), 나리타(1,800만원)보다 훨씬 저렴해 인천공항을 연결 공항으로 삼는 항공사가 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지방도시에서도 미주ㆍ유럽을 갈 때 자국 공항아닌 인천공항을 이용할 정도인데, 환승객 증가는 자연히 공항의 수입증대로 이어진다. 공항관계자는 "지난달 초 미국에서 베트남으로 이동하던 마에하라 세이지 일본 국토교통상이 일본 공항을 거치지 않고 일부러 인천공항에서 환승하며 편의시설이나 출입국 시스템을 직접 견학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영종도=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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