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박주영 신드롬'이 한국 축구를 강타했다. 2005년 1월 카타르 국제청소년축구대회에서 박주영은 9골을 터트리며 청소년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한국 축구의 희망', '축구 천재' 같은 거창한 수식어가 박주영에게 따라 붙었다.
박주영은 독일 월드컵 최종 예선 막바지에 대표팀에 발탁됐다. A매치 데뷔전이었던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 예선 4차전(1-1)에서 천금의 동점골을 터트렸고, 쿠웨이트와의 5차전(4-0)에서는 선제골을 잡아내고 페널티킥을 유도해 추가골을 이끌어내며 펄펄 날았다.
그러나 독일월드컵 본선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조별리그 1,2차전에서 벤치를 지킨 박주영은 스위스와의 3차전에 선발로 나섰지만 부진했다. 대표팀은 0-2로 져 16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박주영은 이후 극심한 성장통을 겪었다. 핌 베어벡 감독은 2007년 아시안컵 본선 엔트리에서 박주영을 제외했다.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서 한 골도 넣지 못했다. 정신적인 중압감이 부진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뭔가에 쫓기는 듯 여유가 없었다. 자신감도 크게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그랬던 박주영이 달라졌다. 한결 어른스러워졌고 자신감이 넘친다. 달라진 박주영의 모습은 29일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이 열린 노이슈티프트 캄플 구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훈련에 앞서 예정된 인터뷰에 나서기 위해 박주영은 동료들에 앞서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인터뷰 차례를 기다리는 박주영에게 취재진이 다가섰다. 허벅지 상태, 최근에 불거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이적설, 독일 월드컵 때의 경험에 대한 질문에 박주영은 성실하게 대답했다. 공식 인터뷰도 거절해 '언론 기피증'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던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달라진 모습은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다. 박주영은 "내가 중심 공격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의 스타일이 달라 각각의 특성에 맞는 선수가 출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발 물러서 팀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돋보이는 대답이었다.
박주영은 2008년 6월 AS 모나코(프랑스)로 이적한 후 기술적으로 진일보 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러나 기술적인 발전보다 정신적으로 강인해지고 성숙해진 것이 더욱 큰 소득으로 보인다.
버거워 했던 '한국 축구의 간판 공격수'라는 무거운 짐을 떠안을 준비가 비로소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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