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최OO, 주민등록번호는 96XXXX-1XXXXXX이에요. 아버지 휴대폰도 알려드려요?"
20일 밤 서울 송파경찰서 조사실. 현관문이 열린 주택에서 물건을 훔친 혐의로 조사를 받던 김모(18)군은 태연히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밝혔다. 하지만 그가 밝힌 신분은 자신보다 네 살 어린 아는 동생의 것이었다. 형사책임이 없는 만 14세 미만의 이른바 촉법소년(觸法少年)의 경우 형사처벌을 면제받는다는 점을 이용하려 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군은 지난해 10월 가출해 빈 집, 교회 등에서 생활하며 절도를 일삼았다. 물건을 훔치다 붙잡혀 소년보호사건으로 세 번이나 처벌을 받은 김군은 올해부터는 유명 가수 이름을 본떠 자신을 권모씨로 소개하며 중학생들과 어울렸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 만 13세인 척 연극을 한 것.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게 되면 미리 외워둔 친구의 사촌동생 최모군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들이댔다. 경찰이 부모님에게 전화로 확인할 것에 대비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당당하게 아버지 휴대폰 번호까지 읊었지만 경찰과 통화한 남성은 김군이 미리 섭외해둔 아는 형이었다. 김군은 이 같은 방법으로 올 들어 이미 세 차례나 법망을 빠져나갔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군은 가정집을 털다 경찰에 붙잡힌 20일에도 생일이 지나지 않아 아직 만 14세가 되지 않은 최군을 사칭했지만, 지문감식을 통해 지난해 절도를 저지른 만 18세 소년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 들통나고 말았다.
경찰 관계자는 "흔히 경찰서에서 늦은 밤 어린 청소년들이 한꺼번에 5, 6명씩 들어오면 간단히 신분을 확인하고 부모에게 연락한 뒤 귀가시킨다는 점을 알고 이를 이용했다"며 "김군이 의도적으로 중학생들과만 어울려 친구행세를 하고 이들에게까지 자신의 나이를 속여왔다"고 말했다.
송파경찰서는 22일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모두 29차례에 걸쳐 400만원어치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김군을 구속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