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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그 집 이야기' 한 농가에서 벌어진 100년간의 희로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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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그 집 이야기' 한 농가에서 벌어진 100년간의 희로애락

입력
2010.05.2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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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 존 패트릭 루이스 글ㆍ백계문 옮김/사계절 발행ㆍ64쪽ㆍ1만9,800원

이 책은 서점에서 어린이책 코너에 꽂힐 것이다. 그림책은 글을 읽는 데 서툰 아이들용이라는 게 통념이므로. 하지만 실은 어른들이 더 좋아할 책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 작가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그림책이다. 20세기 100년 간 벌어진 굵직한 사건과, 그 시간 동안 살다 간 사람들의 삶을 그림으로 펼치면서 삶과 죽음, 역사, 개발 등에 관한 철학적 성찰까지 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그림 한 컷 한 컷은 각각 소설 한 편에 맞먹는 깊고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린이가 봐도 좋지만, 설명을 해줘야 할 것이다. 예컨대 두 차례 세계대전의 비극이나 파시즘 고발과 관련된 장면을 어린이 혼자 이해하기는 어렵다.

주인공은 유럽의 어느 시골마을, 오래된 언덕 위에 있는 한 농가다. 집이 화자가 되어 자기 품에서 일어난 100년의 사건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집이 하는 말은 장중하고 힘찬 4행시로 되어 있다. 이 시들은 중요한 변화가 있었던 열다섯 해를 보여주는 15점의 큰 그림 앞에 배치돼 이해를 돕는다.

17세기에 세워진 뒤 폐가로 남아있던 이 집은 1900년 아이들 눈에 띄면서 새 가족과 새 삶을 얻는다. 그로부터 1999년까지 집은 이사, 결혼, 탄생, 죽음, 전쟁, 이별 등 많은 일을 지켜본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고, 가족이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공포를 번갈아 겪으며 한 세기가 끝났을 때 집은 완전히 달라진다. 소박했던 옛집은 개발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풀장과 자동차를 갖춘 현대식 집이 선다. 집은 항변한다. "2만 가지 이야기를 지닌 그 집은 어디로 갔나?/ 나는 새 주소를 받아들일 수 없다./ 새 것이 꼭 좋은 건 아니라는 옛말은 어디로 갔을까?"

'본격적인' 그림책에서 그림은 글보다 중요한 텍스트다. 인노첸티의 그림책은 특히 그러하다. 정교한 선과 여리고 섬세한 색채로 화면 가득 이야기를 부려놓는 그의 솜씨는 감탄스럽다. 각 장면에 등장하는 수십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표정과 몸짓이 다르고, 자연 풍경 또한 다채롭고 풍성하다. 아이들 웃음 소리, 밀밭의 바람 소리, 차가운 겨울비, 수확철의 포도 향기,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 등 그의 그림은 소리와 냄새, 촉감, 내면의 심리까지 고스란히 살려낸다. 그림이 워낙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 여러 번 볼수록 새롭다.

인노첸티의 그림책은 묵직한 주제와 진지한 성찰로도 유명하다. 1985년과 1991년 브라티슬라바 비엔날레 황금사과상, 2008년 안데르센상을 받았다. 세계 최고의 그림책 작가에게 주는 상들이다. 주요 작품으로 20세기 신여성으로 재창조한 ,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본 2차대전 이야기 ,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 ,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 등이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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