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을 문학적 길 위에서 성찰해온 조성기(59)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주일이면 찾는 산울교회는 변변한 건물이 없다. 3년 정도 예배 공간으로 이용했던 서울 신도림동의 건물이 재개발돼 최근 얹혀 살게 된 곳은 서울 충정로의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건물 강당. 교회 설립 10년째지만 그동안 옮겨 다닌 건물만 네 곳이다.
없는 것은 교회 건물만이 아니다. 담임목사도 없고 소속 교단도 없으며, 무엇보다 십일조 헌금도 없다. 하물며 한 신도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없는'이란 검색어를 입력했다가 이 교회를 알게 돼 찾아왔다고 한다. 70여명의 신도들은 서로를 교우(敎友)라고만 부른다. 사제와 평신도의 구분이 없다.
없는 게 많다보니 '무교회'라고 할 수도 있지만, 조 교수는 "남들에겐 없다고 보이겠지만 우리에겐 '참교회'다"라고 말했다. 신앙의 핵심 요소인 말씀, 기도, 찬양이 살아있다는 뜻이다. 1999년 조 교수가 동역자 몇 명과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 출발한 산울교회는 그러니까, '건물 없는 교회 운동'이자 '평신도 사역 운동'이다.
설교는 전도사 자격증을 가진 조 교수가 한 달에 세 번 하고, 한 주는 다른 교우가 맡는다. 최근 출간된 (랜덤하우스 발행)는 바로 조 교수가 산울교회에서 3년 간 한 설교 내용을 다듬은 책이다.
기독교의 주춧돌을 세운 사도 바울이 당시 로마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인 '로마서'는 두 말 필요 없는, 기독교 교리의 정수를 담은 정전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대속(代贖)과 은혜로 풀이하고 '율법'을 넘어서는 '믿음'을 구원의 열쇠로 정립한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 마틴 루터, 요한 웨슬레 등 개혁자들에게 기독교의 거대한 길목에서마다 영적 각성을 주었다.
조 교수가 로마서를 강조하고 나선 데도 우리 시대의 새로운 영적 각성에 대한 요청이 깔려 있다. 무엇보다 바울이 넘어서려고 했던 구약의 율법이 대형화ㆍ성전화하는 현대 교회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좋은 동기에서 출발했지만 각종 교회법 등이 오히려 낡은 가죽부대가 돼서, 종교가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하는 면을 갖게 됐어요." 십일조만해도 교인을 얽매이게 하는 현대 교회의 대표적 율법이라는 것이다. 천막 장사로 생계를 유지했던 바울은 복음의 대가로 헌금을 받지 않았다. 그는 '값 없이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율법을 넘어서는 믿음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로마서의 가장 뜨거운 구절은 아마도 7장일 터. 책 제목을 따온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장 24절)는 바울의 탄식은 인간 내면에 흐르는 죄의 참상을 자각한 양심의 절규이자, 무력한 인간의 한계에 대한 절망적 질문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조 교수는 로마서 7장을 통해 인간의 존재론적 갈등과 구원의 길을 읽으며 "끊임 없이 찾고 질문하면서 기다려라. 그러면 은총의 빛이 찾아올 것"이라고 전한다. 책은 그래서 교조적인 답을 제시하는 해설이 아니라, 저자 스스로의 신앙적 체험과 고민을 풀어내고 유교, 불교의 경구들까지 넘나들면서 현대 사회의 경쟁, 교회의 타락에 지친 이들을 따뜻하게 보듬는다.
산울교회의 지향점도 좌표를 잃고 방황하는 이들과 함께 질문을 던지며 은총을 찾는 것이다. 조 교수는 그런 까닭에 산울교회를 '길 위의 교회'라 부른다. 10여년 간 이곳을 거쳐간 이들은 수백명 정도.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 인사들,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인 전순옥씨도 이곳 교우다. 함께 공부하고 배운 말씀의 홀씨를 각자의 영역에서 뿌린다는 점에서 '흩어지는 교회'인 셈이다.
최근 좌옹 윤치호의 삶을 다룬 역사소설 (뿔 발행)도 출간하면서 문학과 종교 활동을 왕성하게 병행하고 있는 조 교수는 "양자 사이에서 많이 갈등했지만, 이제는 접점을 찾았다"고 말했다. '길 위의 교회'는 그에겐 문학과 종교의 화해이기도 한 셈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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