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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부 도시, 역사와 대화하다 <1> 마르세유 - 버려진 담배공장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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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부 도시, 역사와 대화하다 <1> 마르세유 - 버려진 담배공장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입력
2010.05.2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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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햇살이 따사로운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 마르세유. 생 샤를 기차역 인근의 '벨드메(la Belle de Mai)' 지역은 노동자 등 서민들이 주로 사는 동네다. 과거 이곳에는 12만㎡에 이르는, 1886년 세워진 프랑스담배공사의 대규모 공장이 있었다. 하지만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1990년 이 공장은 커다란 몸뚱이와 수많은 실업자들만 남긴 채 문을 닫고 말았다.

도시의 흉물로 전락한 낡은 공장에 스며든 것은 가난한 예술가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공장은 '프리쉬라벨드메(Friche la Belle de Mai)'로 바뀌었다. '프리쉬'는 프랑스어로 '버려진 땅, 황무지'라는 뜻이다. 하지만 마르세유에서 프리쉬는 창조적 에너지로 도시 재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희망의 땅'으로 통한다.

시간의 흔적 간직한 공간

행선지를 밝히자 나이 지긋한 택시기사 마르탄 아무다는 신이 나서 말했다. "요즘 최고 인기 드라마 '아름다운 삶'을 거기서 찍었잖아요. 오랫동안 참 못사는 동네였는데 외국 사람들도 많이 오고, 엄청나게 발전했죠."

하지만 프리쉬라벨드메의 겉모습은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건물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허름했고, 벽면에는 어지러운 그래피티가 가득했다. 건물과 벽 사이 공간에 설치된 레일에서는 동네 아이들이 시끌벅적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었고, 녹슨 기계들도 눈에 띄었다. 베아트리스 시모네 프리쉬라벨드메 사무처장은 "상처난 곳을 보수하고, 목적에 맞게 내부를 리모델링하기도 하지만 본래의 흔적들을 없애지는 않았다. 비록 아름답지 않더라도 이곳이 지닌 시간성 역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리쉬라벨드메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1구역에는 도시 유적 아카이브 시설이, 2구역에는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 시설이 들어서 있고, 가장 큰 4만5,000㎡ 규모의 3구역은 1,000여명의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레지던시, 70여 개 예술단체의 사무실과 연습실, 전시장, 공연장 등으로 이뤄져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500회 이상의 문화 행사와 80여 회의 워크숍이 열리며, 180여 개의 국제 교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연간 12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1991년 설립 당시 10명 남짓이던 직원 수는 450명으로 늘어났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만남을 경험한다. 힙합, 재즈, 록, 퍼포먼스, 서커스, 오페라 등 온갖 형태의 공연과 실험적 예술이 거의 매일 펼쳐진다. 탁아소, 스케이트보드 강습, 요리 프로그램, 매주 서는 장터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일상 생활과도 닿아있다.

10년째 이곳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키네틱아트 작가 에티엔 레이는 "여기서 만난 음악가와 팀을 이뤄 연주와 설치미술이 합쳐진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레지던시의 유일한 한국작가인 이아람씨는 아틀리에의 벽에 숭숭 뚫린 구멍을 활용한 미술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이씨는 "기획자, 작가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이 전시 기회로 연결되기도 하고, 아틀리에 방문 프로그램에서 만나는 학생들과의 대화도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예술가, 도시, 그의 도시"

프리쉬라벨드메는 1991년 연극집단 '시스템 프리쉬 테아트르(SFT)'를 필두로 몇몇 예술단체들이 비어있는 공장에 들어가 작업하면서 시작됐다. 마르세유 시는 1992년 이곳 부지를 매입해 이들에게 저렴하게 임대했다. 당장 빈 공장을 처리할 마땅한 대안이 없어 만든 한시적 방책이었지만, 예상을 깨고 프리쉬라벨드메는 도시의 문화중심지로 성장했다.

예술가들은 '예술가, 도시, 그의 도시'라는 이념 아래 공간 운영과 프로그램 진행을 주도한다. 레지던시 입주 작가도 예술가들이 자체적으로 선정한다. 처음 이곳에 둥지를 튼 SFT가 각 예술단체 간의 조율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하루종일 공간의 문을 열어놓고 대중과 자연스레 교류하면서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경계를 허물었다.

프랑스의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도 이곳에 합류했다. 그는 1995년부터 5년 간 프리쉬라벨드메의 대표를 맡아 이곳의 위상을 도시 재생의 차원으로 확장시키는 데 힘을 보탰고, 그 결과 프리쉬라벨드메는 마르세유의 도시 정비 사업인 '유로 메디테라네' 프로젝트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2000년대 들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마르세유시는 이곳의 부지 매각을 고려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와 예술가, 상주 단체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프리쉬라벨드메는 사회적 기업으로 형태를 전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새로운 도약을 꿈꾸다

프리쉬라벨드메의 지난 시간은 마르세유 도시 전체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마르세유는 19세기 초부터 지중해의 중심적 항구도시로 전성기를 구가했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됐다. 알제리계 이민 2세인 프랑스의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의 고향도 이곳이다. 그러나 산업 구조가 바뀌면서 도시는 쇠락을 거듭, 높은 실업률과 범죄 등 각종 도시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그런 마르세유가 요즘은 문화적 물결로 일렁이고 있다. 유럽연합이 매년 도시 한 곳을 선정해 문화행사를 집중적으로 벌이는 '유럽문화수도' 사업에서 2013년의 도시로 뽑혔기 때문이다. 장 누벨, 자하 하디드, 마시밀리아노 푸크사스 등 건축계의 거장들이 새 랜드마크가 될 건축물들을 짓고 있고, 800여 개의 문화 프로젝트가 예정돼 있다.

2013년 유럽문화수도 프로젝트의 홍보 디렉터인 미쉘 세르당은 "마르세유의 문화적 잠재력을 입증하는 프리쉬라벨드메의 존재가 선정 과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유럽문화수도의 각종 행사에서도 거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는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이나 런던의 테이트모던미술관처럼 공간의 용도 전환을 통해 성공을 거둔 대규모 문화시설들이 많다. 하지만 프리쉬라벨드메는 정부가 마련한 틀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스스로, 유산적 가치가 없는 전혀 뜻밖의 공간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박신의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도시 재생이 시설보다는 사람에 의해, 인위적 문화보다는 지역문화의 자생력을 통해 이뤄지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 렉스트레 장 누벨 스튜디오 부소장

"현장이 움직인 후 정책 만들어져 사회적 파장 컸다"

"전통적인 공간과 제도 안에서는 새로운 예술과 문화가 탄생될 확률이 희박합니다."

파브리스 렉스트레(43ㆍ사진) 장 누벨 스튜디오 부소장은 프랑스에서 '프리쉬'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기획자로 프리쉬라벨드메의 창립을 주도한 뒤 10년간 이사로 근무한 그는 2001년 프랑스 문화부의 의뢰로 작성한 연구보고서 '폐공간, 실험실, 공장, 스콰트, 복합 프로젝트…문화행동의 새로운 세기'를 통해 1970~80년대부터 유럽에서 서서히 진행돼온 폐공간의 예술적 전환 흐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프랑스 문화부는 이듬해 교육부, 도시국, 관광국 등 여러 부처와 공동으로 이와 관련한 국제토론회를 개최했고, 프리쉬들의 네트워크인 아트팩토리협회와 이들을 지원하는 도시연구소도 설립됐다.

렉스트레는 "기존에는 늘 정책이 먼저였는데, 현장에서 움직임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정책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사회문화적 파장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보고서를 만들 당시만 해도 프리쉬는 극히 일부의 현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대중, 도시와 긴밀하게 연결된 새로운 문화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며 "현재 프랑스에는 프리쉬라벨드메와 같은 공간이 100여 곳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프리쉬도 이제는 정책적 지원을 받아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과정에 있지만, 여전히 예술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며 "미술관이나 오페라극장 등 기존 문화와의 차별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건축 프로젝트와 심포지엄 참석 등으로 여러 차례 방한한 적이 있는 렉스트레는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을 인상깊게 봤다"면서도 "한국에 갈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유럽의 사례를 들여왔을까 깜짝 놀라게 된다. 사회마다 맥락이 다르기에 절대로 다른 나라의 사례를 그대로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도시를 위해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에 "정해진 레시피는 없다. 예술가들이, 또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 국내 사례- 문래창작촌

초고층 아파트와 오피스 빌딩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골목길 안쪽에는 기계음이 귀를 때리는 철공소들이 섬처럼 모여있다. 그리고 철재 상가 2, 3층에서는 연극, 무용, 미술 등 여러 장르의 예술가 170여명이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홍대나 대학로 등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싼 곳을 찾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문래창작촌이다.

문래창작촌은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이 공간을 만들어놓고 입주 예술가를 선발하는 국내의 여타 창작공간과는 확연히 분위기가 다르다. 예술가들의 작업공간과 쇳가루 날리는 공장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는 풍경도 이곳만의 매력이다. 문래동의 작가들은 2007년부터 '물레아트페스티벌'을 개최,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작품을 선보이며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1월 서울시는 문래창작촌에서 5분 거리에 문래예술공장을 열었다. 서교예술실험센터,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 등 서울시가 앞서 만든 창작공간들이 예술가 입주시설인 데 비해 문래예술공장은 기존에 형성된 문래창작촌의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이다. 문래창작촌과 문래예술공장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이 지역을 서울의 문화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에 공연장, 전시실, 녹음실, 영상편집실 등을 갖췄고, 작가들에게 작품 발표 기회도 준다. 요즘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 전시 '싹' 역시 창작촌 작가 8명의 작품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문래동의 작가들은 지원과 위협을 동시에 받고 있다. 준공업지역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2008년 서울시 조례가 개정되면서 이곳에도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도시 디자인이 큰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는 하나의 예이기도 하다. '싹' 전에 참여한 조각가 최문석(30)씨는 "얼마 전까지 월 20만원이던 임대료가 25만원으로 올랐다"면서 "똑같이 아파트를 짓기보다 문래동만의 특성을 살린 예술거리로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윤규 국민대 건축대 교수는 "문래창작촌은 정부의 개입이나 거대 조직의 운동이 아니라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의해 국내 도시 재생의 새로운 형식을 발생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전시장을 지어주는 등 가시적인 지원보다는 좀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작가들의 창작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르세유=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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