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경협사업에 전념해온 기업들이 절망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모든 교역물품의 반출ㆍ반입이 금지됨에 따라 관련 업체들은 줄도산 위기에 몰렸고, 개성공단 입주업체들도 공단이 폐쇄될 경우 별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박영일 남북농림수산물사업협의회 회장은 26일 "정부 시책에 따라야 한다는 마음은 변함 없지만 어떤 유예조치도 없이 갑작스럽게 교역을 전면 중단한다고 하니 당혹스럽다"면서 "우리의 상황을 잘 아는 통일부가 있으니 뭔가 조치가 취해지더라도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여지는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안이 벙벙할 뿐"이라고 말했다. 남북의류임가공협의회 관계자는 아예 "며칠 전까지는 한숨을 쉬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절망감을 느낀다"고 했다.
남북경협경제인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정태 안동대마방직 회장은 "그나마 연초에는 6자회담 가능성이 거론되길래 가을쯤이면 정상화할 수도 있겠거니 하고 기대했는데 이제는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교역을 통해 북한이 시장경제를 배우게 됐고 북한 주민들의 인식 변화도 적지 않았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단절되니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당장 북한에서 농수산물을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거나 원료를 들여와 가공판매하는 업체들은 일손이 끊겼다. 한 의류 위탁가공업체 사장은 26일 "북한에 이미 대금을 지금했는데도 물품을 반입할 수 없다고 한다"며 "다음주면 일감이 없어질 텐데 난감하다"고 말했다. 한 수산물 수입업체 관계자도 "조개류와 새우 등을 들여오지 못하니 직원들이 할 일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한 농산물 수입업체 관계자는 "남북교역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해온 대다수 업체의 규모가 영세하기 때문에 상황이 심각하다"며 "보험 가입 업체도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류 중단 사태가 조금만 길어져도 제대로 버텨낼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통일부에 따르면 200여개 대북 위탁교역 업체와 580여개 일반 교역업체 중 경협보험이나 교역보험 가입 업체는 10개가 채 안된다.
아직까지는 정상 가동중인 개성공단 기업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대북 심리전이 개시되면 북한이 공단을 폐쇄하겠다고 했다는데 상황이 그렇게 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만에 하나라도 공단이 폐쇄되면 상당수 기업이 도산 위기에 몰리게 될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기업들 입장에선 걱정이 크지만 딱히 방안이 없기 때문에 체념하는 듯한 분위기도 적지 않다. 전날 통일부 당국자와 간담회를 가졌던 박영일 회장은 "많은 업체들이 부도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전달했지만 통일부는 별다른 답변 준비도 안됐던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역협회 산하 남북교역투자협의회의 김고중 회장도 "기업들 입장에선 상황을 지켜보는 것외엔 달리 방도가 없지 않겠냐"고 했다.
개성공단 입주업체인 ㈜로만손의 장호선 대표는 "경협 문제만큼은 남북 정부가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따지지 말고 경제 논리에 따라 원만하게 처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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