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지론으로 돌려야 마음이 편해지는 의문이 있다. 자주 '우주의 끝'을 떠올려 보지만 제대로 생각을 간추릴 수 없다. 절대자의 존재를 떠올리면 쉽게 풀어질 것 같지만 그 또한 의문만 보탠다. 우주의 창조자로서의 절대자는 '우주의 끝' 너머, 우주의 밖에 있지만, 우주의 주재자로서의 절대자는 이미 우주의 안에 들어와 있다. 그래서 초월자를 떠올려보지만, 진정한 초월자라면 개입과 관여를 상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생각이 끊긴다. 꼭 우주의 경계만이 아니라, 물질과 생명 등 모든 경계에 이르는 순간 생각을 밀고 나갈 힘이 빠져버린다.
■ 생명은 다양하게 정의된다. 생리작용이나 신진대사를 강조하면 상식과 통하기는 쉽지만, 생명현상에서 생명을 찾는 동어반복이 된다. 생명은 에너지가 자유롭게 오가는 '열린 체계'이자 높은 질서, 즉 낮은 엔트로피의 체계라고 할 수 있지만, 유기물이라는 기초 소재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그나마 유전정보를 담은 DNA나 화학적 생체반응을 조절하는 단백질(효소)을 중심으로 생명을 파악하는 생화학적 관점이 유력하다. 다만 과학의 기본 요건인 '반복성'과 생명의 일회성이 맞물리기 어려워, 철학과 종교에 많은 부분을 떠넘겨야 했다.
■ 과학은 생명의 기초인 단백질과 DNA를 밝히고, 특정 조건에서 무기물을 유기물로 바꾸어 '원시 단백질'을 만들기도 했다.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물의 전 유전정보(게놈)도 잇따라 밝혔다. 게놈 해석으로 언제든 염기를 그렇게 배열하면 생명의 물질적 요건은 채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물질이 무생물과 생물의 경계를 뛰어넘어 생명으로 비약하기 위해서는 창조자의 '입김'이나 동양의 '생기(生氣)' 같은 '그 무엇'이 따로 필요했다. 생명의 해명을 철학과 종교에 기대는 것도 바로 '그 무엇'을 과학이 아직 찾아내지 못한 때문이다.
■ 미국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가 '인공 생명'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은 과학이 '그 무엇'에 다가섰다는 설레임을 안긴다. 연구팀은 화학약품으로 (가)박테리아의 게놈을 합성해 (나)박테리아의 게놈을 빼낸 자리에 넣어, 자기복제도 가능한 완전한 (가)박테리아로 만들었다. 껍질과 함께 '생기'를 빌렸다는 점에서 아직 '인공 생명'과는 거리가 멀지만, 물질과 생명의 경계에 발을 내디딘 것만도 역사적이다. 인간 게놈 해석을 수년이나 앞당기는 데 기여했고, 인류공통의 지적재산 확보에 관심을 쏟아 온 벤터 박사의 쾌거라서 한결 믿음직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