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전혁림 화백의 그림으로 만든 넥타이가 있다. 어느 핸가 선생을 뵈러 갔다 선물로 받은 것이다. 통영바다를 추상화한 그림으로 만든 넥타이인데 코발트빛이 화사하다. '爀'(혁)이라고 쓴 사인도 들어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매는, 내게는 귀한 넥타이이다.
유택렬 화백이 운영하던 진해 흑백다방에서 선생을 처음 만나 인사를 드렸다. 선생은 진해군항제 기념으로 열리는 미술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자주 오셨다. 올백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그때 이미 선생은 60대였고 나는 시인을 꿈꾸던 20대였다. 나는 행사장에서 어른들의 일을 돕는 젊은 심부름꾼이었다.
봄도다리를 뼈째 수북하게 썰어놓고 막걸리를 마시던 당대 화가와 시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그 뒷자리에 앉아 이중섭 화가의 이름도 듣고 청마 유치환 시인의 일화도 들었다. 전혁림 화백은 통영이 고향이다. 저 유명한 통영의 르네상스 시대,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윤이상 선생 등과 함께 활동하셨던 분이다.
그분들 모두 세상 떠나시고 혼자 통영을 지키며 전혁림미술관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셨다. 세상에 우연은 없나보다. 그 넥타이를 세탁소에 맡겼다 찾아놓은 날 저녁에 전혁림 화백의 부고 기사가 떴다. 1916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95세이다. 지난번 통영 윤이상기념관 개관식에 갔다 선생을 찾아뵙지 못하고 온 것에 마음이 서늘해진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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