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린 24일 오후 1시 서울 중구 태평로 파이낸스센터 앞 버스 정류장. 중국 유학생 번서맹(31ㆍ서울대 동양화과 석사과정), 리홍메이(27ㆍ서울대 전기공학과 석사과정)씨는 운전기사의 “어서 오세요. 출발합니다”라는 친절한 인사에 미소로 화답하며 502번 버스에 올랐다. 용산 KT전화국 정류장에서 내린 두 사람은 하지만 이내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기다리는 중 다른 버스가 ‘씽’하며 급출발하면서 도로에 고인 빗물을 이들 쪽으로 튀긴 것. 차선에서 좀 떨어져 신발과 옷까지 젖지는 않았으나 리홍메이씨는 “패인 도로 탓도 있겠지만 조금 느린 속도로 운행하면 보행자에게 이렇게까지 물이 튀지는 않았을텐데…”라며 시야에서 사라지는 버스를 불만스럽게 응시했다.
외국인 12명이 지난 19일부터 8일간 서울시 버스 서비스 수준을 평가하는 ‘암행어사(mystery passenger)’로 활동했다. 이들은 2인 1조로 45개 노선을 버스로 이동하며 친절도, 교통법규 준수, 버스 및 정류장 불편사항 등을 점검했다. 2008년 가을부터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 번서맹, 리홍메이씨는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면서도 “서울시청 앞 정류장은 노선에 따라 덕수궁 쪽과 플라자호텔 앞 등 여러 군데에 흩어져 있어 혼란스럽다. ABC 등으로 구분 필요”(번서맹) “버스 앞쪽에 손님이 몰려있는데 뒤로 이동하게끔 안내하는 운전자 노력이 부족”(리홍메이) 등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중앙차로 및 가로변차로 모두 있는 정류소 구분, 버스 내 간단한 구급약품 설치 등 아이디어도 냈다. 리홍메이씨는 “지난해 8월 등교할 때 내리막길에서 버스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넘어져 하루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안전운전을 당부했다.
평가단 의견을 종합한 결과 외국인들은 버스 운전기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친절하고, 교통법규도 잘 지키지만 다소 조급해 승객에게 안정감을 주지는 못했다고 평했다. 또 공통적으로 차내 버스 안내도의 글씨가 작으며 내부전광판을 활용한 다국어 안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본인 후쿠시마씨는 “운전자가 ‘태워준다’에서 ‘모시고 간다’라고 생각을 바꾼 버스 안의 ‘지도자’가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G-20 정상회의 등 대형 국제행사를 앞두고 외국인들의 불편을 개선하고자 처음 실시한 이번 평가단에 옥의 티도 눈에 띄었다. 첫날 활동 보고서를 제출한 조는 6개 팀 가운데 한 팀에 불과했다. 리홍메이씨는 “교통 법규 준수여부 항목은 ‘잘 지키지 않은(지킨) 법규를 써달라’고 하기보다 주요 법규 리스트를 제시했다면 더 세밀히 관찰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직장과 학업 때문에 미처 완수하지 못한 분들은 연장하기로 했다”며 “미흡했던 점은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외국인의 평가 결과를 적극 반영해 버스 서비스를 개선하고, G-20을 앞둔 10월께 코엑스와 주요 호텔을 중심으로 버스 서비스 점검을 추가 실시할 계획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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