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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식만 하냐구요? 더 예뻐요" 한부모 자녀 돌봐주는 정신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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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식만 하냐구요? 더 예뻐요" 한부모 자녀 돌봐주는 정신향씨

입력
2010.05.2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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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에서 1등 했어요. 선생님이 다음에도 잘하라고 칭찬했어요."

1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 따스한 봄 햇살 아래 조촐한 생일잔치가 열렸다. 은정(10ㆍ가명)이는 정신향(45)씨에게 쉴새 없이 재잘거렸다. 자랑하고 싶은 게 많은 모양이었다. 은정이는 지난달 20일 치른 중간고사 다섯 과목 중 세 과목(국영수)을 만점 받았다고 했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엄마와 귀여운 막내 딸의 정다운 풍경. 그러나 정씨와 은정이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모녀 사이보다 살갑다. 정씨는 이날 생일을 맞은 은정이에게 초콜릿 케이크와 분홍색 필통을 선물했다. 은정이는 "고맙습니다"며 정씨 볼에 입을 맞췄다. 정씨 얼굴에 한 가득 미소가 번졌다.

딸이 생기다

정씨는 2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에서 청소년 상담 봉사활동을 하는 전업주부였다.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잘못된 아이는 없다. 엄마가 바뀌어야 한다'는 소신이 생겼다.

지난해엔 마포구의 복지시설인 '시소와나그네' '마포희망나눔'에서 진행한 '엄마학교' 교육을 받았다. 밥 짓는 법을 배우듯, 엄마 되는 법도 배우고 익혀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올해는 아예 상근활동가로 나서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을 맡고 있다. 내 아이 잘 키우는 방법은 물론 남의 아이를 돌봐주는 방법도 프로그램 내용에 들어있다.

아들만 셋(고3, 중3, 초5)을 둔 정씨가 은정이를 만난 건 4개월 전. 은정이의 담임교사가 소개해줬다. 3년 전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은정이는 낯가림도 없이 정씨를 잘 따랐다. 정씨는 "(은정이가) 열다섯 살 차이가 나는 오빠와 편찮으신 할머니와 살다 보니 이것저것 챙겨주는 엄마 품이 그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정씨는 집에서 가사일을 혼자 도맡아 하는 은정이가 안쓰러워 엄마 되기를 자처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은정이와 연극을 보러 다니고, 담임교사도 만난다. 때로는 은정이 또래인 셋째 아들 지훈(12)이와 함께 어울린다.

정씨는 "내 아이도 키우기 힘든데 어떻게 남의 아이를 키울까 두려움이 앞설 때가 있지만 은정이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 남을 배려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관심을 쏟고 있다"고 했다.

상상력이 풍부한 은정이의 꿈은 작가다. 그래서인지 글 쓰기를 좋아하고 매일 일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또 하나의 가족을 꿈꾸다

정씨는 은정이를 돌보면서 부모 멘토링을 준비하는 모임 '더꿈'(더불어 꿈꾸는 사람들)을 만들었다. 회원 10여명은 내 아이를 잘 키우면서 이웃의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도록 조언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아직 선뜻 용기를 낼 수 없지만 정씨처럼 이웃의 아이를 함께 돌보기 위한 마음을 키워가는 셈이다. 이들은 매주 한 차례씩 만나 , 등 자녀 양육에 관한 책을 읽고 토론을 한다.

"다음 주에는 뭐할까?" 정씨가 물었다. "찜질방이요!" 은정이가 수줍게 웃었다. 정씨는 "데려갈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찜질방에 못 가봤다'며 예전부터 가자고 졸랐다"고 귀띔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자식만 할까. 그가 되물었다. "꼭 자기 배로 낳아야만 자식인가요? 서로 정(情)을 나누면 자기 자식과 다름 없답니다. 징그러운 아들 녀석들보다 이제는 막내딸인 은정이가 더 귀여운 걸요."

서울 시내에는 은정이 같은 한부모가정의 아이들은 초등학생 1만708명을 포함해 모두 3만8,672명(22세 미만ㆍ2009년 기준)이 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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