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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프로야구 중계, 몇 가지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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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프로야구 중계, 몇 가지 제안

입력
2010.05.2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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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실수한 선수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지 말아야 한다. 슬로모션과 클로즈업의 결합은 특히 최악이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입에서는 유난히 욕이 잘 나오기 때문이다. 삼진을 당한 타자, 홈런을 맞은 투수, 에러를 범한 야수의 입에서는 어김없이 욕이 나온다. 소리가 안 나와서 괜찮다는 것은 착각이다. 경기 도중 투수와 포수가 마운드에서 만나서 이야기할 때도 글러브로 입을 가리지 않는가? 상대팀에게 입 모양을 읽혀서 작전이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건 야구 팬의 상식이다.

욕설 장면 비추지 말자

TV는 갈수록 대형화하고, 화면의 해상도는 날로 좋아진다. 클로즈업으로 잡힌 선수의 입 모양은 누구라도 해독이 가능하다. 슬로모션까지 걸리면 욕을 하는 선수의 얼굴 근육 움직임에 따른 감정 표현의 진행 형태까지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어린이에게 꿈을 주기 위해 시작한 프로야구는 어린이에게 욕을 가르치는 교본이 된다. 해당 욕을 할 때는 얼굴을 어떻게 찡그리고 입술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는 없다.

물론 선수들이 욕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수십 년간 야구 중계를 보아온 야구 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다소 무리한 바람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해 온 선수들에게는 어쩌면 자신의 격렬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많지 않을 것이다. 승리만을 강조하는 코치들이 먼저 자신의 감정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더구나 오늘날 한국에서 욕은 보편 언어이다. 지하철에서 들리는 청소년들의 대화에서는 욕이 감탄사이자, 접속사이고, 대명사이자, 형용사다. 프로야구 협회가 욕을 하는 선수들에게 징계를 내리는 방법도 효과적이지 않다. 징계가 너무 일반화돼서 징계로서의 효과가 없어질 것이다. 실수한 선수들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지 않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혹시 모르니 아주 멋진 플레이를 한 선수의 얼굴도 피하자. 감탄사는 절망만이 아니라 터질 듯한 기쁨을 표현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해설자들도 욕을 한 선수에 대해 엄하게 나무라야 한다. 그래서 어린이 시청자에게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해주어야 한다. 공공 매체 속에서의 해설에 필요한 것은 그 분야의 전문적 지식만이 아니다. 윤리 의식도 필요한 것이다. 욕하는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허허, 좀 많이 흥분했군요."라고 웃어넘기는 해설자의 말을 듣노라면, 욕은 흥분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

해설자의 윤리의식이 시험 당하는 때는 또 있다. 바로 심판의 오심이 생겼을 때다. 슬로모션 화면으로 보아 오심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해설자들은 오심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침묵하거나, 혹은 "애매한 부분이 있네요."하다가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입니다."로 끝난다. 해설은 심판이나 선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청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애매한 부분을 판단하고 확인하기 위해 해설자라는 전문가가 있는 것이다.

선수·심판 잘못 지적해야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입니다."라는 말은 특히 문제다. 다분히 같은 업계 종사자인 심판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로 들리는 이 말이 갖는 치명적인 오류는 진실의 왜곡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경기의 운영은 심판진의 몫이지, 해설자의 몫은 아니다. 해설자가 할 일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진실을 명확하게 하는 일이다. 사소한 진실의 왜곡을 묵인하는 분위기 속에서 어린이 시청자가 배울 것은 없다.

당장 오늘의 경기부터 기대해 본다. "저 선수 실수했다고 욕을 하면 안 됩니다. 수백만의 시청자가 보고 있습니다." "이번 판정은 심판의 명백한 오심입니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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