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조기교육에 대한 갈망이 많은 학부모들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있지만 다행히도 최근에는 조기교육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조기교육으로 인해 발생한 온갖 부작용을 생각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조기교육이 성공이 아니라 실패공식이라는 인식이 상식으로 굳어져야 할 것이다.
조기교육은 분명 강력한 유혹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입시경쟁에서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찬양의 대상이 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따라서 남들보다 먼저 출발한다는 의미를 갖는 조기교육은 매우 강력한 경쟁력처럼 여겨진다. 특히 경제력이 있는 일부 학부모들만이 조기교육을 구매할 수 있기에 더욱 유혹을 느낀다.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듯 보이는 영어 조기교육에 대한 욕망이 대표적이다. 영어에 한 맺힌 부모들의 대리만족까지 겹쳐 영어 조기교육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맹목적인 추종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경제적 사정으로 조기교육을 시키지 못하면 마치 패배자가 된 것처럼 낙담한다.
단언컨대 조기교육은 득보다 실이 많은, 그래서 반드시 피해야 할 최악의 교육적 선택이다. 두뇌에는 엄연히 발달단계라는 것이 있다. 뒤집을 수 없는 자연의 순리와도 같은 것이다. 건축물에 비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1층 공사를 할 수 있고, 1층이 튼튼해야 2층 공사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만약 2층에만 눈이 팔려 기초와 1층 공사가 부실해지면 어떤 결과가 올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다양한 놀이와 체험이 1층이라면 교과 공부는 2층에 해당한다. 너무 일찍 공부에 매달리면 무리한 공부에 따른 거부반응으로 인해 자녀가 점차 공부를 멀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찬가지로 모르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유발이 1층이라면 시험공부는 2층에 해당한다. 역시 처음부터 시험에만 집착하게 되면 공부에 대한 태도가 부정적으로 바뀌어 열심히 하려고 해도 집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몸을 무리하게 굴리면 몸살을 앓는 것처럼 두뇌도 지나친 부담을 주면 일종의‘뇌살’을 앓는다고 봐야 한다.
무조건 남들보다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뿐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조기가 더 조기를 낳는다. 5세가 조기였던 것이 4세로, 3세로 계속 내려간다.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에 자녀의 준비 정도에 맞는 공부가 아니라 무작정 앞서가는 공부에 매달리다보니 부실공사가 불가피해진다.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지만 다양한 과잉학습장애로 인해 결국 학교의 정상적인 진도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바로 피해자다. 남들보다 앞서가기 위한 맹목적인 시도가 오히려 낙오자로 만드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는 셈이다.
조기교육이 아니라 ‘적기교육’을 해야 한다. 적기교육이란 발달단계에 맞춰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일찍 시키고 싶지만 참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하는 것이 바로 적기교육의 핵심이다. 현재의 조기교육은 사실 학부모의 심리적 만족감 말고는, 학생 입장에서 보면 온갖 부작용을 낳는 악순환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조기교육은 정말 하루라도 빨리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좋은 악습 같은 것이다. 물론 조기교육의 마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느낌은 참기 힘들다. 하지만 핀란드 영어교육에서 희망을 찾아보자. 비영어권 국가 중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나라로 손꼽히는 핀란드에서는 ‘적기’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지만 반드시 지켜야 교육적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무리하게 욕심을 내면 실패한다는 인식이 확고부동해서 모국어 사용능력을 다지기 전에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본다. 많이 놀아야 공부도 잘하게 된다는 믿음, 시험보다는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이 우선이라는 소신이 너무도 확실하다. 남들보다 빨리, 그리고 많이 시키면 실패한다는 생각이 핀란드 사회 곳곳에 깃들어 있다.
제대로 준비가 된 상태에서 부담 없이 편하게 배움에 몰입하는 핀란드 학생들의 공부 효율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영어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과목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반대로 무리하게, 그래서 억지로 꾸역꾸역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의 공부 효율성은 바닥권이다. 시작은 먼저 하지만 결국은 뒤지고 마는 길과 천천히 시작하지만 결국 앞서가는 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학생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자. ‘적기’라는 말도 획일적으로 적용하면 문제가 생긴다. 철저하게 개인 차이를 존중하여 맞춤형 지도를 해야 한다. ‘맞춤형’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올바른 기준은 바로 학생이다. 결코 학부모의 욕심도, 교육 전문가의 견해도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힘겨워 하지 않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해서 스스로 성취할 수 있는 수준이 절대 기준이 돼야 한다.
조기교육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위험천만하다. 반면에 적기교육은 답답하게 보이지만 성공을 보장한다.
비상교육공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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