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에서 회의를 한 적이 있다. 그 기관은 민간소유 건물에 세 들어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다음 모임 준비를 골똘히 생각하며 건물을 나서다 사고가 났다. 엘리베이터를 내리자마자 건물 밖으로 나가는 자동유리문이 알아서 열리겠거니 하고 다가섰다가 꽝 하고 머리를 부딪쳤다. 이마에서 피가 많이 흘러 눈앞을 가렸다. 유리창에 부딪힌 참새 꼴이 되고 말았다.
나 말고도 여러 사람이 다친 적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런데도 그 주인은 안전 문제를 소홀히 했다. 센서가 민감하게 반응하면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문이 열리고 닫히니,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센서의 민감도를 낮추거나 각도를 조정했을지 모른다. 그럴 경우 반응이 느려지거나 문이 열리지 않아 나와 같은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예방할 수 있는 일을 방심하고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화가 났다. 다행히 안경이 깨지지 않았고 눈에도 이상은 없었다.
나야 어릴 적에 워낙 장난꾸러기여서 이마에 흉터가 많아 하나 더 생긴 들 큰 일이 아니다. 연약한 어린이나 여성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지금도 이마에 흉터가 빨갛게 남아 있지만 액땜한 셈 치자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너무 문제에 매몰되거나 쫓기듯이 사는 내게 ‘느림의 미학’을 깨우쳐 준 사건이기도 했다. ‘문제에게 벗어나 느리게 살다 보면 어느 순간인가 깨달음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일들이 많지 않는가.’ 어떻든 더 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건물주가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했다. 얼마 뒤 다시 찾아가보니 유리문에 반투명 빨간 띠를 붙여 투명유리를 식별하도록 해 놓았고, 센서도 훨씬 민감하게 작동하는 듯했다.
환자의 진단에 이용하는 검사도 이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검사의 민감도가 떨어지면 질병을 초기에 제대로 진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경우 질병이 악화되어도 미처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만약 그 환자가 최근에 받은 검사에 이상이 없었더라도 몸에 특정 징후가 나타나면 전문가의 진료를 받아 마땅하다.
반대로 검사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 병이 없는데도 마치 있는 것처럼 나올 수 있다. 이 때 과도한 정밀검사를 더 하게 되어 불필요하게 신체적 고통을 받거나 많은 검사비용이 들 수 있다. 어디 그 뿐 인가.‘괜찮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가슴 졸이며 정신적 고통을 받기도 한다. 이런 문제는 개인이 하는 건강검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 검진의 경우에는 검사의 효과와 엄청난 검사 비용과 피해 등을 더 철저하게 검증해야만 한다. 어떠한 결정을 하더라도 항상 선의의 피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검사 대상자나 검사 항목,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
건강 검진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갑상선 초음파검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혀 증상이 없어도 검사상 이상이 발견되면 세포검사를 하게 되고, 암으로 확진되면 수술을 해야만 한다. 갑상선암은 증상이 없는 경우 갑상선암으로 사망하는 일이 드물 정도로 예후가 좋다. 최근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가 발표한 자료에서 완치율을 의미하는 5년 생존율이 98.8%이었다. 불확실성을 두고 개인의 선택을 누가 하지 말라고 금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불필요한 검사로 인한 건강상의 피해와 비용을 고려해 전문가들과 정부가 나서서 건강 검진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국민을 위해 적극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책임연구원 가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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