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절도범인 줄 알고 잡은 범인이 5년 전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한 강간 사건 피의자와 동일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서울 서대문경찰서에 따르면 피의자 구모(51)씨가 영등포 구치소에 구속 수감된 것은 지난달 20일. 훔친 귀금속을 영등포의 한 금은방에 팔았다가 장물 관련 탐문 수사를 벌이던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의 한 모텔에 머물고 있던 구씨는 처음에 "공사판 현장에서 주운 것"이라며 딱 잡아뗐다. 그러나 거짓 진술임을 직감한 경찰의 추궁에 구씨는 절도 사실을 자백했다.
경찰은 전과 8범인 구씨의 이력으로 보아 여죄가 있을 것으로 보고 구씨의 동의를 얻어 입안 점막세포를 떼어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전자 분석을 의뢰했다.
보름 남짓 지난 이달 10일께 국과수가 보낸 회신에는 뜻밖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2008년, 2009년 일어난 절도 사건과 2005년 강간 및 특수강도 피의자의 유전자와 구씨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것. 경찰이 내민 유전자 감식 결과 앞에 구씨는 "담배 한 대 줄 수 없겠냐"며 자포자기 심정으로 모든 범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건은 5년 전 이 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씨는 2005년 5월14일 오후 5시께 서대문구 남가좌동 일대를 돌며 범행 장소를 찾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 주택 한 곳의 초인종을 눌러보니 인기척이 없었다. 빈집으로 생각한 구씨는 창살을 뜯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안방에서 자고 있던 이모(당시 23세)씨를 발견한 구씨는 흉기로 위협해 이씨를 강간하고 현금 5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당시 임신 6개월이었던 이씨는 구씨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씨는 이로 인해 결국 아이를 잃게 됐고 이혼까지 당해 화목했던 가정은 한 순간에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이씨는 현재 지방으로 내려가 혼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건의 절도사건에선 구씨가 빈집의 쇠창살을 뜯는 과정에서 남긴 혈흔이 결정적 단서가 됐다. 경찰 관계자는 "모든 피의자의 유전자 분석을 의뢰하는 것도 아니고 순순히 동의해 주는 피의자도 별로 없다"며 "구씨가 5년 전 발생한 사건인데다 '설마'하며 별다른 생각 없이 응한 것 같다"고 말했다.
2006년 5월 출소한 구씨는 절도 혐의에다 특수강간 혐의까지 더해져 중형선고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흉기 등을 휴대하거나 2명 이상이 합동해 강간을 저지르는 특수강간의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된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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