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미누아 지음ㆍ박규현, 김소라 옮김/아모르문디 발행ㆍ560쪽ㆍ2만4,000원
노인 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한국은 이미 고령화 사회다. 노후 대책은 모든 개인과 국가의 근심거리가 됐다. 노인 공경, 효를 강조하는 전통적 윤리는 늙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없애줄 힘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프랑스 역사학자 조르주 미누아가 쓴 는 고대에서 르네상스까지 서양 역사에 나타난 노년의 이미지를 추적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성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책이다. 노인의 사회적 위치와 노년을 보는 눈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으며, 그것이 노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밝힌 역저다. 원서는 1987년 나왔다. 그 전까지 노년은 역사학이 다루지 않던 주제다. 중요한 주제임은 틀림없지만, 의미가 모호하고 윤곽도 흐릿해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탓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없었다. 이 책이 나옴으로써 비로소 역사학은 잊혀진 노년의 역사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을 새삼 실감케 하는 책이기도 하다. 근대가 출발하는 17세기 이후로는 인구통계 등 노년 연구에 필요한 참고자료가 많은 데 비해, 이 책이 다루는 16세기까지는 사료가 드물다. 이러한 난점을 돌파하기 위해 저자는 문학과 예술작품을 주로 분석하는 한편 고대의 의학서적과 묘비명, 중세 교구의 인명부와 성인, 왕, 교황에 대한 기록 등 파편으로 흩어진 자료들을 모아 노인의 초상을 그려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년의 황금시대는 없었다. 노년을 보는 눈은 각 시대의 사회구조, 가족제도, 정치, 경제, 종교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달랐지만 일반적으로 비관주의와 적대감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노인은 미움을 받거나 경멸을 당했다. 권력과 부를 쥐면 젊은 세대의 비난을 샀고, 주변부로 밀려나면 지독한 멸시를 받았다. 로마의 공화정 시기는 전자에 속한다. 로마법은 가장인 노인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했는데, 젊은 세대는 이를 노인의 횡포로 보았다. 당시 세간에 유행한 희극은 노인을 조롱하는 것으로 청년층의 분노와 복수를 대신했다.
늙음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는 데서 더 나아가 증오하고 경멸하는 경향은 고대 그리스나 르네상스 시기에 특히 심했다. 아름다움과 힘을 찬미하던 그 시대에 노인은 비루하고 추한 악으로 여겨져 멸시의 대상이 됐다. 젊음을 숭상하면 할수록 늙음은 거부당했다. 에라스무스 같은 16세기 인문주의자들도 노인에 대한 지독한 반감을 서슴없이 말했다. 노년의 가치를 옹호한 몽테뉴조차 정신이 흐트러지고 몸이 쓸모없어지면 자살이 최선이라고 권장했다.
반면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노인의 사회적 위상을 높였다. 흑사병으로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는데, 대부분 어린이와 청년이 희생되고 노인들은 살아남아 가족과 사회의 중심이 된 덕분이다. 중세 말 상업 발달로 부를 축적한 노인들이 등장했을 때도 노년에 대한 적대적 시선이 잠시 누그러졌다.
이 책은 본격적인 학술서이지만, 대중 교양서로도 손색이 없다. 저자는 호메로스에서 셰익스피어까지 문학의 향기를 고스란히 흡수하고, 여러 철학자들의 진지한 사색과 논쟁을 따라가면서, 그림과 조각 등 예술작품까지 망라해 매끈한 필치로 노년의 역사를 조명한다. 덕분에 편안하게 읽고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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