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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무릉도원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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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무릉도원을 꿈꾼다

입력
2010.05.2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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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리 깊이 들어갈 작정은 아니었다. 슬슬 걸으려다가 뒤에서 빵빵대는 자동차를 피해 샛길로 접어들다 보니 어느새 인적 없는 산길을 걷게 되었다. 평일 한낮의 산길은 적막하리만큼 호젓했다. 그 길가에 늦게 핀 복사꽃이 환했다. 분홍 꽃 그늘에 주저앉아 시간을 잊었다. 옛사람이 왜 복사꽃 피는 마을을 이상향으로 그렸는지, 비로소 실감하였다.

무릉도원의 고사는 고대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 쓴 에서 유래한다. 진시황의 학정을 피해 무릉의 심산유곡에 마을을 이루니 복사꽃잎 날리는 마을의 아름답고 넉넉한 모습이 별천지가 따로 없더라는 이야기는, 이후 천 년을 이어지며 도원(桃源)의 이상을 전한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안견의 가 그렇고, 조선시대 여러 야담집에 실린 '도원 방문기'가 그렇다. 도연명의 시대로부터 1,000여년이 훌쩍 흐른 뒤에도 이들은 여전히 첩첩산중에 숨은 별천지 도원을 그린다.

하지만 무릉도원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도무지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꿈의 마을은, 좁은 동굴과 천길 낭떠러지, 몸이 빠지는 모래밭을 지나야만 닿을 수 있다. 그러니 세상의 인연이 닿지 않음은 당연지사. 무릉도원의 주민들은 세상과 인연이 끊어진 땅에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길쌈을 하고 양봉을 쳐서 스스로의 삶을 자급자족한다.

남의 살림을 넘보지 않고, 곳간 가득 재물을 쌓아두지 않으며, 일 없이 놀고먹기를 바라지도 않는 사회를 이상으로 여긴 것은 무릉도원만이 아니다. 공자는 에서 "천하가 만인의 것이니 다스림에 신의가 있고 노동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자기만을 위하여 소유하지 않는" 대동사회의 이상을 그렸다. 를 쓴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모어도 공동노동, 공동소유, 공동생활을 원칙으로 한 유토피아를 가장 이상적인 사회로 보았다. 제 것을 챙기고 비교하며 경쟁하는 사이, 욕심이 자라고 다툼이 일어나 평화가 깨진다고 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상향의 태반이 세상과 동떨어진 심산유곡이나 섬에 위치한 점이다. 무릉도원은 하나같이 산과 절벽에 에워싸인 깊은 산중에 있으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섬나라이고, 박지원이 에서 그린 이상향과 허균이 에서 말한 율도국 역시 육지에서 뚝 떨어진 섬이다. 경쟁도 유혹도 없는 작은 공동체에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며 자급자족하는 사회를 옛사람들은 세상에 다시없는 이상향으로 여긴 것이다.

오늘날, 옛사람이 전하는 이상향의 꿈은 얼핏 하릴없는 몽상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꿈속에는 부패한 국가에 대한 불신과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비판이 드러나며, 그 비판정신은 현실의 극복을 배태한다. 1907년 김광수는 이라는 소설에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사회가 육아를 책임지고 모든 아이들을 평등하게 교육하는 이상향을 그렸다. 이전 세상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꿈이지만 그의 꿈은 오늘날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역사란 그렇게 누군가의 꿈이 모두의 꿈이 되고 마침내 현실이 되는 과정이다.

선거가 열흘 뒤다. 투표를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비관을 떨칠 수는 없지만, 비관의 현실을 그저 받아들이기엔 역사가 미안하다. 이상을 꿈꾼 이들 덕분에 이 나마의 현실도 있으니, 더는 내가 사는 땅을 모독하지 않기 위해서도 기꺼이 한 표를 던져야겠다. 개똥밭에 살아도 도원을 꿈꾸는 이여, 내 표를 받으시라. 부디 갈라진 이 땅을 꽃 피는 마을로 만드시라.

김이경 소설가·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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