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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불법행위에 '원인자 부담'을

입력
2010.05.2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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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의 당선자가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이 확정되면 기탁금과 선거비용을 환수 당하는데 반해 낙선자는 동일한 형을 선고 받더라도 환수 당하지 않는다. 당선자와 낙선자를 합리적 이유없이 차별하고 있다." 전 서울시교육감 공정택씨가 남긴 명언(?)이다.

그는 지난해 7월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당선됐으나 부인의 차명예금 4억여원을 재산신고에서 누락한 혐의로 150만원의 벌금형이 확정됐고 교육감직을 상실했다. 그가 당선자와 낙선자의 차별을 문제삼은 것은 서울시선관위가 당선됐다고 자신에게 돌려준 기탁금과 선거비용 28억8,000여 만원을 반환하라고 통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돈을 낼 수 없다고 행정소송을 냈고, 지난 14일 서울행정법원은 돈을 내놓으라고 판결했다. 낙선자의 경우 '당선무효'의 개념이 있을 수 없거니와, 당락이 결정된 후에 낙선자가 고발되어 선거법위반 여부로 기소된 사례도 거의 없다. 그래서 그의 항변은 푸념과 억지로 보인다.

당락 불구하고 범법은 추궁해야

한데 달리 생각해보니 그의 말에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당선무효에 해당할 수 있는 위법행위'를 저질렀으나 낙선되었다는 이유로 그 위법행위는 묻혀버리게 된다. 결국 불법이든 탈법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에서 이기고 보자는 욕심이 깔리지 않을 수 없다. 당선되는 순간 힘과 대비책을 잘 갖추게 되니 처벌을 피해갈 여지가 많아지는 게 선출직 공직자의 현실이라는 인식도 작용한다. 출마하는 모든 후보가 '불법에 대한 유혹'이 생길 만하다.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 최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이 위법행위로 옷을 벗게 되어 재ㆍ보궐선거를 해야 한다면 그 비용의 일부를 물도록 하는 '원인자 부담 제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가 되거나 개인비리로 사직하는 경우까지 선의의 유권자들이 낸 소중한 세금을 재ㆍ보궐선거에 허비할 수 없다는 취지다. 모든 비용은 몰라도 최소한 유권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이나 피해보상은 해야 한다는 의미다. 공씨 문제에서 선관위와 행정법원이 내린 결정과 같은 맥락이며, 이를 제도적으로 일반화 자동화 하겠다는 것이어서 공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최근 토착비리의 표본으로 적발됐던 단체장들의 사례를 보면 이들에게 형사적 처벌만 받게 해선 안되고, 유권자와 국민들에 대한 '민사상의 배상ㆍ보상 책임'도 지워야 하는 당위성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들이 온갖 수단을 부려 축적한 재산은 결국 그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가로챈 것이며, 스스로 휘두른 갖가지 잘못된 권한은 유권자들이 맡겨둔 권리를 도용한 것이다. 게다가 조사, 구속, 버티기, 재판 등으로 발생하는 행정 공백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피해로 남는다.

수천 명의 단체장과 의원, 교육감과 위원을 뽑는 6ㆍ2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만 명의 후보가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그들의 면면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신중히 투표하라고 한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너무나 어려운 주문이다. 유권자들의 주의 의무와 함께 후보들이 언감생심 함부로 나서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사회적 분위기를 다듬어야 한다.

중도사직 땐 선거비용 물리도록

선거법을 위반했을 경우 당선자는 당선이 무효 되어야 하지만 낙선자라 할지라도 저지른 불법행위는 처벌을 받게 된다는 사회적 약속이 마련돼야 한다. 당선이 되더라도 유권자나 주민들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피해를 끼치면 옷만 벗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칫 패가망신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도록 해야 한다.

행자부 장관이 추진하고 있다는 공직선거의'원인자 부담 제도'가 이번 선거에서부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6월 2일이 지나면 이 검토마저 흐지부지될 것이 뻔해 보이는데, 정치권과 후보자들에게 이러한 취지를 살려나가겠다고 각서라도 받아두면 어떨까.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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