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자락인 경북 봉화군 문수산 기슭의 암자에 기거하는 고우(古愚ㆍ73) 스님은 올해 초 한 신문 기사를 보고는 새벽 일찍 서울로 가기 위해 나섰다. 경북 영주에서 오전 6시 첫차를 타고 3시간 걸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 뒤 스님이 곧장 찾은 곳은 인근의 멀티플렉스 극장. 영화 '아바타'를 보기 위해서였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구현된 판도라 행성의 신천지를 보며 고승은 고함을 쳤을까, 몽둥이를 들었을까? "3D로 봤는데, 충격이었다"는 기자에게 스님은 "나는 4D로 봤다"며 한술 더 떴다. "의자가 막 흔들리고 진짜 물도 튀더라고, 머리 뒤로 새가 지나가고. 야아~ 그 기술은 참 대단하데!"
주눅들 만큼 대단한 기술이지만 스님은 꼿꼿했다. 그래봤자 미국 영화라는 것이다. "(나비족이) 자연과 교감하는 것까지는 좋아. 한데 자연을 지키는 방법이 폭력이더라고. 지금 미국이 테러에 맞선다며 전쟁을 벌이는 그런 것과 똑 같아."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이 지구인에게 저항하는 데에도 폭력, 즉 힘의 논리가 동원됐다는 것이다.
스님의 아바타 관람은 실은 영화를 둘러싼 풍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신문을 보니 이어령 교수가 터치폰과 아바타를 두고 '생명자본주의' 개념을 제시했더라고. 생명자본주의가 뭐꼬? 싶어 봤지. 근데, 모든 문제를 결국엔 힘으로 해결하는 건데 그게 무슨 생명이야. 아무리 나한테 불이익을 주고 해를 끼치더라도 절대 폭력은 안 되는 거예요. 그건 불교적 사고가 아니에요."
21일은 석가모니가 이 땅에 오신 지 2554년 되는 날이다. 부처님의 의미를 되묻기 위해 17일 찾아간 봉화군 첩첩산중의 금봉암에서 스님은 대중영화까지 놓치지 않고 시대와 소통하고 있었다. 스님이 던진 메시지도 결국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으니, 소통하라'였다.
_ 저항하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힘이 동원될 수밖에 없지 않나요.
"부처님도 당시 힌두교도들한테 괴롭힘을 많이 당했지만 항상 태연했어요. 한번은 힌두교도들이 몰려와, 요새 여야 정치인들처럼 부처님 얼굴에 침을 뱉고 욕을 했는데 부처님이 아무 반응을 안 하니 질려서 돌아갔어요. 그때서야 제자인 아난이 '부처님 어떻게 참으셨냐'고 푸념을 해요. 그러자 부처님이 '좀 전에는 그 사람들을 연민했는데, 지금은 너를 더 연민한다'고 하세요. 그 사람들은 성질대로 행동했는데, 너는 그걸 꾹꾹 참았으니 위선을 더 떤 게 아니냐는 거죠. 부처님은 아무리 불이익을 받더라도 화를 내지 않았고 연민으로 문제를 풀었어요."
_ 불교식 저항은 되레 상대를 연민하는 것이라는 말씀이신데, 연민은 우월한 입장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요.
"상대를 낮게 보고 불쌍하게 보는 연민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나오는 안타까움의 심정이에요. 우리는 존재 원리가 똑 같아요. 너와 내가 다른 게 아니라 같은 원리로 이뤄졌다는 것을 이해하면 남을 해치거나 비난하거나 폭력을 쓸 수 없어요. 그 존재 원리를 모르고, '나'라는 게 있다고 집착해서 편을 가르고 누굴 해치고 욕하는 게 너무 안타까운 거죠. 그게 연민입니다."(스님은 불교계가 2008년 현 정부의 종교차별에 항의하는 대규모 규탄대회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었을 때,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는 게 맞다"고 역설했다. 그게 불교식 항의, 즉 연민이라는 얘기다.)
_ 진보니 보수니 하며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 갈등은 여전한데요. 자기를 버리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자기 이익 때문에 벌어지는 갈등인데 이를 쉽게 버릴 수 있을까요.
"눈 앞의 이익만 보니까 그렇죠. 우리나라의 갈등지수가 0ECD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높다고 해요. 그 갈등의 대가로 치르는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27%라는데, 그 돈이 무려 300조원이에요. 싸움하면서 그 많은 돈을 낭비하는 거죠. 그 돈이면 소외된 사람들도 돕고, 온갖 복지를 다 펼 수 있어요. 자기를 버리면 결국엔 더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자기를 희생하라는 게 아니에요. 남을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길이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남을 사랑하게 되는 거죠."
스님은 인터뷰 내내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不二法門)'는 깨달음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만물의 근원적 평등성에 대한 인식이다. "짚으로 제품을 만들면, 가마니도 되고 짚신도 되고 새끼도 돼요. 각자 모양은 달라지지만, 본질은 하나예요. 이를 깨닫게 되면 가마니니 새끼니 하며 서로 싸우고 대립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스님은 그러면서 이 인식에서 나오는 네 가지 삶의 실천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것. "비교만 안 해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비교하느라 열등의식에 빠지고 잘하는 것도 못하게 돼요." 비교가 멈춘 자리는 높고 낮음도, 귀하고 천한 것도, 우수하고 열등한 것도 사라진 세계다.
그때서야 드러나는 것은 모든 존재의 고귀한 의미다. 둘째는 곧 자기 일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알라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도 똥 푸는 사람은 천민이었는데, 열등의식에 빠진 그에게 부처님은 남들이 기피하는 일을 네가 하고 있으니, 네가 진정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깨우치셨어요."
셋째는 그러니까 자주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일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으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단계다. 마지막은 소통하라는 것이다. 다른 존재를 인정하며 더불어 함께 살라는 말씀이다.
스님이 제시한 네 가지 삶의 실천도 결국 출발점은 하나다. "부처님의 육신이 태어난 날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부처님오신날의 진정한 의미는 부처님이 얻은 깨달음이죠. 모든 게 분리돼 있지 않고 하나라는 것, 그 인식을 통해 만물도 새롭게 탄생하게 된 셈이죠."
●고우 스님은/ 불교계 대표적 선지식… 禪의 대중화에 힘 쏟아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 선지식으로 꼽히는 고우 스님은 대중에게는 2000년대 들어서야 알려졌다. 25세 때 경북 김천시 청암사 수도암에서 출가한 후 거의 평생을 봉암사, 범어사, 각화사 등의 선원이나 암자에서 수행정진했기에 스님들 사이에서만 덕망이 높았던 선사이다. 1968년 결사도량으로 유명한 문경 봉암사에서 선원을 재건해 조계종 종립 특별선원의 기틀을 다졌고, 이후 선원수좌회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2007년 조계종 원로의원, 2008년 대종사에 올랐다.
40여년 선의 길을 걸었던 스님은 10여년 전부터 재가 불자를 상대로 강의에 나서는 등 선의 대중화에 힘을 쏟고 있다. 오랜 수행 경험을 바탕으로 어렵고 현학적인 불교 용어 대신 쉬운 우리말로 불법을 명쾌하게 설명, 선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켰다.
스님은 권위주의는 눈꼽만큼도 찾기 어려운 소탈한 성품을 지녔다. 2006년 문수산 기슭에 마련한 금봉암에 홀로 기거하며, 불법을 배우려는 이는 누구라도 반갑게 맞아 자상하게 설명해준다. 이른바 '문중'도 없고, 남들 수십명씩 두는 제자도 딱 둘만 두고 있다.
봉화=글·사진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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